매일신문

[홍성걸의 새론새평]사면(赦免)의 정치학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극도의 어려움 속에 희망을 갈구하는 신축년 새해 벽두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자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정치권은 사면 정국에 휩싸였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서 사면법에 의한 절차적 규정은 있으나 대상이나 범위 등에 큰 제한은 없다. 과거 재벌을 대상으로 사면권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어 유전무죄라는 비난이 일었고, 이것이 법 적용의 형평성과 공정성, 사회적 정의를 해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아직 입법화되지는 않고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측면에서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민생 관련 범죄에 적용되는 일반사면과는 달리 특별사면은 더욱 엄격히 시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기본적 입장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정치를 생각해 보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과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선례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두 사람은 내란죄 등 엄청난 범죄를 이유로 소추가 진행되었다. 당시 소멸시효 등 여러 문제가 있어 결국 5·18특별법을 제정하여 재판을 진행했고 유죄 판결에 따라 최종적으로 무기징역 등의 형이 선고되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 김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사회 통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의 합의로 사면을 단행함으로써 두 전직 대통령은 2년여의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었다.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 대통령의 이 같은 결단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저버리지 말자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이후 한동안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갈등은 있었으나 서로 정권을 주고받으며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국면이 바뀐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부패 의혹 수사가 노 대통령의 자살로 끝나면서 386 중심의 친노 세력이 노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천명하면서부터다.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여파로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잡은 386세력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정적 척결에 나섰고, 이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은 한국 정치의 전면에 재등장하여 사회를 극도로 분열시켰다.

전직 대통령 사면에 반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대표 개인의 정치적 야망으로 사면 카드를 쓴 것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반성이 먼저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주장하는 촛불혁명에 대한 모욕이나 세월호 진실 조사 미진, 두 전직 대통령의 해외 재산 은닉 의혹이 사면 불가의 이유라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과 관련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국정 농단에 관해 이미 사죄한 바 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4년이 다 되어 가도록 세월호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진상조사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해외 재산 은닉 의혹 때문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산 의혹이 있다면 증거를 바탕으로 고발하면 될 일이고, 설혹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죄를 딸에게 묻겠다는 것은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 위반이다.

지금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란 사람들이 오히려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면서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의 높은 국정 지지도의 견인차였던 중도적 유권자들이 급속히 떨어져 나가고 있다. 많은 정책 실패와 함께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져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이 크다. 이러한 때에 전직 대통령 사면은 화해와 통합을 이룰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면은 언제 이루어지든 항상 찬반양론이 있게 마련이다. 형의 확정이라는 형식 요건이 갖추어진다면 문 대통령의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정치적 이해득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국론 분열과 극한 대립으로 인한 피해보다 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