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과학적 사고 그리고 의심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현대인의 일상에서 달력은 중요하다. 물론 양력이다. 음력은 부정확한 옛날 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추석이나 설 이외에 나에게 중요한 의미는 없었다. 입춘, 처서, 대한 같은 절기도 나하고 관계없는 음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도 입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직 무더위가 있는데 가을이 시작되는 처서라는 말이 현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땅과 나무를 관찰하면서 절기를 비교해 보니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알아보니 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었다. 수천 년 전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한 태양의 길을 황도라고 하고 24등분해서 각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물론 농사를 위해서 관찰한 결과물이다. 천문을 읽어서 천재지변을 예측하고 농사가 잘되도록 하는 것은 고대 왕들의 통치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자연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찰을 하고 자료를 모아서 결과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관찰한 것들이 오늘날 수학, 천문학 등 과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기초에서 모든 자연현상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온을 측정해서 영하의 날씨면 그냥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절기로 2월 3일은 봄의 입구라는 입춘이다. 하지만 밖은 여전히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날이 많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하니 땅이나 나무가 1월과는 다름이 있다. 땅은 얼었지만 중간중간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풀리면서 1월에 비해 모든 것이 부드러워졌다. 나무는 잎의 눈이 달라졌다. 겨울 동안에는 두꺼운 껍질에 꽁꽁 싸여 있었는데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지면서 제법 파란 빛을 띠고 있다. 현대인들은 피상적인 온도만 보고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이렇게 작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겨울이 끝나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의사 생활을 시작하던 40년 전에는 CT나 초음파 같은 진단 장비들이 없었다. 자연히 진단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오면 간단한 복부 사진을 찍고, 청진기를 대고 장의 움직임은 어떤지, 배를 만지고 또 만지면서 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추측했다. 판단이 틀리고 진단명이 달리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했다. 요사이 진단 기계의 발달은 눈부시다. 몸 구석구석 구조물을 파악할뿐더러 구조의 변화 없이 화학적인 변화만 있는 단계에서도 조기에 병의 유무를 진단한다. 당연히 병의 진단 확률도 높아지고 의사들의 진단 기계 의존도 높아졌다. 이제는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의사가 배 한 번 만져 보지 않고 사진 찍고 피 검사부터 먼저 하고 병을 판단한다.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검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아무런 불편이 없어도 검사에 문제가 있으면 약을 먹고 수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계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계의 정확함에 의사의 경험이 합쳐져야 한다. 드물지만 기계 진단과 경험으로 판단한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사고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기술을 알고 있어도, 실수의 여지는 항상 남아 있다." 유명 과학자의 말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맹신은 피해야 한다. 알려진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소문을 사실로 착각하지 말자. 주위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의심하면서 변수를 생각하자. 더구나 사람이 대상인 경우는 감정이란 변화무쌍한 변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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