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제가 나이를 먹고 아버지처럼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보니 더 그립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요. 초등학교 6학년 첫 수학여행을 가던 날 "사나이가 어디 가서 기죽으면 안 된다"라고 하시며 제 작은 주머니에 만 원짜리를 다섯 장이나 넣어 주셨던 아버지. 저는 가슴이 떨려 잘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사고 싶었던 저는 하회탈 목걸이를 사려다 판매상의 꼬임에 스무 개나 사버렸던 추억이 있지요. 지금도 하회탈을 보면 그때의 기억에 웃음이 지어집니다.
제가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넉넉히 챙겨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좋았던지 지금 제 아들에게도 "남자가 호주머니가 비어있으면 기죽는다"라며 용돈을 챙겨주곤 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참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식사시간마다 밥상머리 교육으로 자신의 삶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셨던 나의 아버지. 불의를 보면 참지 말라고 가르치셨던 나의 아버지. 태산처럼 크고 강인하신 멋진 나의 아버지.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저와 현찬이가 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밑거름이 된 거 같습니다.
저희가 보았던 아버지 모습은 책임감 있는 강직한 남자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마을 이장을 20여 년 하시며 늘 아버지를 마을주민들과 공유해야 했습니다. 마을 민원으로 힘든 시간이 있었을 때도 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정직한 모습에 바보라는 소리도 종종 들었었지요. 가족들은 그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어른이 되고 성인이 되어보니 아버지의 그 올바른 삶이 우리 자식들에게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고향 마을 갈 때마다 어르신들의 후한 사랑으로 또 아버지의 사랑을 저희가 대신 받을 때마다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오랜 시간 지병으로 당뇨를 앓고 계시며 관리 하시는 것을 알았지만, 항상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께 문안을 갔을 때 아버지께서 "결혼했으니까 니 가족 먼저 챙겨라. 놀러도 많이 다니고 그래라. 나는 그게 후회되더라" 라고 하시며 허허허 웃으시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는 그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아버지와 시간을 더 보내지 않았을까 그게 너무나 후회되네요.
아버지.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첫째가 공부를 잘했을 때, 둘째가 아주 귀여울 때도 아버지께서 이 아이들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만 보면 울던 그 작던 첫째가 벌써 4학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 엄마 키만큼 커졌지요.
아버지 저처럼 현찬이도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현찬이의 아이들도 너무나 귀엽습니다. 아버지께서 다 품에 안아 보셨으면 이런 표정이시겠구나! 상상하곤 합니다.
저도 현찬이도 아버지께서 저희를 키워주신 것처럼 잘 키우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겠지요. 항상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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