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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자기 사랑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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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인근을 지나가는 시민들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25일 오후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인근을 지나가는 시민들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이호준 문화부장
이호준 문화부장

출근길에 건너는 이면도로 끝 짧은 횡단보도가 있다. 초등학교 모퉁이에 있는 횡단보도여서 등교하는 학생 등의 안전을 위해 교통안전지도를 하는 분도 계신다. 어느 날 이분이 보행자가 없는 사이 이면도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들의 대로 진입을 위해 교통안전 깃발로 보행자 횡단을 막았을 때 일이다. 보행자 두 명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왔고 보행자 정지 안내에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교통지도에 따라 움직이던 차들은 놀라 급히 제동을 걸어야 했다. 교통지도를 하시던 분도 깜짝 놀라 '건너지 말아야 했다'고 점잖게 어필을 했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그분에게 한마디 던졌다. "사람이 먼저지!"

맞는 말이다. 횡단보도에선 보행자가 우선이다. 그러나 교통안전지도 요원이 있다면 안내에 따르는 게 맞다.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교통지도를 따르지 않는 것은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색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먼저'라는 미명 아래 너도나도 사회적 약속을 깨트리게 되면 사회 무질서를 불러오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일상에서 '나만 생각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아파트 동 출입구와 가깝다고, 또 주차하고 출차하기 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주차면이 많이 있는데도 통로나 출입구 부근 등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상습적으로 주차해 불편을 끼치는 경우도 적잖다. 복잡한 산책로, 계단 등에서 우측통행이라는 보행 방향을 지키지 않고 편한 대로 다니며 뒤죽박죽 혼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자기 사랑'에 대한 정당성과 방법론을 펴는 주장과 이론 등이 책, 방송, SNS 등 각종 매체에 넘쳐 난다. '자기 사랑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내가 없는 삶은 그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등의 개념을 핵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나 중심의 삶을 사는' 라이프 스타일이 확산되면서 '자기 사랑'은 현대사회의 주요한 트렌드가 됐다. 자기 사랑을 통해 삶의 질을 더 높이고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애'(自己愛)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만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둘 다 '자기 사랑'이지만, 성숙도에서 차원이 다르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덜 성숙한 '자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이기·개인주의의 악순환에 빠져 더 삭막해지고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최진석 전 서강대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읽기'에서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넘어 다음 단계인 선진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정체를 알기 힘든 벽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고 했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어젠다를 직선적으로 잘 완수했고 그 탄력으로 선진화라는 벽을 넘어야 했는데, 그 벽을 넘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최진석 교수의 선진화 담론처럼 지금 우리의 '자기 사랑'도 성숙이라는 벽에 막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를 잃고, 희생하며, 눈치 보며 살았던 삶'에서 '이제 나를 돌아보며 나를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만 생각하는 자기애'의 벽에 막혀 좀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나만'을 넘어, 나와 남을 함께 고려·배려하고 존중하는 '자기 사랑'으로 업그레이될 때 선진화, 선진 국민에 상응하는 성숙된 자기 사랑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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