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詩)- (2)시를 어떻게 써야 할까

시는 쉽고 재미있고 깊이있게 써야 해요. 글감은 일상 체험 속에서 구해야 하고요. 그저 생각에만 의존해서 시를 쓰면 삶의 실제에서 벗어나 관념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시를 쉽게 쓴다는 말은 곧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의미지요. 쉽게 쓴 시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편히 읽힙니다.

설사 무거운 주제라도 쉽고 가볍게 써야 합니다. 그러면 읽는 재미도 깊이도 더하지요. 시가 살고 죽는 것은 시어 하나하나를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번뜩이는 말놀음은 시의 긴장감과 의미망을 확장시켜주지요. 그러나 말장난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일상 주고받은 말들 시답잖게 받아 적은 시 한 편 읽어볼까요.

"시집 한 권 냈다고 /팔십 평생 땅뙈기 일구고 산 오촌 당숙께 보내드렸더니 /달포 만에 답이 왔다 /까막눈한테 뭘 이래 마이 지어 보냈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우린 /시래기 국만 끓여 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허기야,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 /아무 맛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 봐도 그렇고 /입맛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 먹으면 좋것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 /

(중략) /그나저나 니 지어 논 시 /닭 모이 주듯 시답잖게 술술 읽어보이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 /고운 치매 들었다하이 /내 맴이 요로코롬 시리고 아프노 /시도 때도 없이 자식 농사가 질이라고 했는데 /풍년 드는 해 보자고 그랬는데" ('詩, 생전 듣도 보도 못한'의 일부)

이 시에 대해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고 엄청 편들어준 오탁번 시인의 시편 일부가 떠올라요.

"껄껄껄 웃으면서 악수하고 /이데올로기다 모더니즘이다 하며 /적당히 분바르고 개칠도 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똥끝타게 쏘다니면 된다…"('우리 시대의 시창작론' 일부).

시 제목이 하도 거창해서 눈 빠지도록 들여다보았어요. 이게 '시'인가? 한참을 껄껄 따라 웃다, 나도 모르게 시답잖은 시 술술 받아 적기 시작했네요. 시는 그저 있는 대로 보고 듣고 받아 적는 거지요. 힘이 들어가거나 속임수를 쓰면 금세 다 들통나버려요. 그러면 시답잖은 시와 시다운 시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가? 시인으로서 고민해봐야 할 화두지요.

시는 모름지기 이데올로기와 모더니즘, 사실과 은유, 보수와 진보 등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시답잖니, 시답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해요. 시는 일상 속 살아 있는 말 이전의 말을 전하는 방편이거든요. 한 편의 시가 서정성을 띠든 이념성을 띠든 그 시 속에 삶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시로서 손색이 없지요. 서정성의 시만이 수준 높은 시고, 사실을 구체화한 시는 시가 아니다 라는 단순 잣대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일상을 바탕으로 한 현상이나 사건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되, 진정성을 지니고 깊이를 더한다면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가 됩니다. 여기에 무슨 서정이니 참여니 또는 사실이니 은유니 하는 형식 논리로 시가 되고 안 되고를 구분 짓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요.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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