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3일 가석방됐다. 하루 앞선 12일, 삼성의 기둥인 삼성전자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이란다. 그의 석방에 대한 세간의 특혜성 비판 등을 겨냥한 다목적용 단협 체결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87년 작고한 할아버지(이병철), 2020년 타계한 아버지(이건희)에 이어 삼성의 3대(代) 수장이 된 이재용 앞날 행보의 한 상징이 될 수도 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일어난 할아버지는 사업 보국의 경영철학을 세웠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최고 품질로 세계에 삼성의 깃발을 날렸다. 그러나 두 선대 부자(父子) 때 노조만큼은 약했다. 아버지가 1995년 외친 '정치는 4류, 관료·행정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구호에 비춰 보면 삼성 노조는 무류(無流)였다.
2대에 걸쳐 삼성이 두루 일군 자랑스러운 일은 수두룩하다. 선대 두 경영자의 탁월한 능력과 실천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한 배경은 역시 나라의 울타리와 숱한 삼성의 노동자 일꾼임은 굳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쓸쓸히 숨진 여성 노동자에서부터 외곽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그들 피와 땀이 없다면 삼성 왕국의 존재 역시 모래성과 무엇이 다르랴.
할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대 정치권과의 밀당 끝에 기초를 닦고 아버지가 세운 품질 제일의 바탕 위에 이재용은 삼성을 이끌게 됐다. 그가 짊어진 삼성의 새로운 도약과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두 부자 선대조차 이루지 못한 무류의 삼성 노사문화를 일류(一流)로 만들 때가 됐다. 두 선대의 삼성이 앞서 바꾼 기업 문화의 성공 사례는 널려 있고, 이는 나라 안팎에서도 이미 인정한 터다.
지금 우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노사 문화의 늪에서 허덕이며 앞선 세대가 일궈 놓은 소중한 성과들을 갉아먹고 있다. 삼성의 두 선대는 시대 상황상 노조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도 좋을 만했는지 모르지만 이재용의 삼성은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이재용은 선대가 당대 우선순위대로 할 일을 한 것처럼 노사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제 이재용은 선대가 가보지 않았고, 경험하지 못한 삼성 노사 문화의 길을 내야 한다. 이런 이재용의 삼성으로, 한국이 '3류 정치, 2류 관료·행정, 1류 기업'으로 한 단계 높아진 나라로 도약하길 기대하면 과욕일까. 이건희는 신경영 깃발에 삼성의 미래를 그리며 삼성 영문자 'A'의 가운데 줄 '-'을 없앴다. 세계와 우주로 이어지는 타원형 테두리에 경계와 막힘의 줄(-)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사에서도 막힘과 경계가 없는 삼성, 이는 이재용의 몫이다.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럴 때가 됐다. 할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과 옛 대구대학 포기·권력층 양도 같은 악연을 겪었고 손자인 자신도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최서원 등과의 악연으로 옥살이를 했다. 그런 만큼 삼성은 앞으로 정치에 발목을 잡히고, 정치에 기대는 일을 없애 정치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삼성이 그런 4류 정치와의 얽힘에서 벗어나고 정치를 3류에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 새로운 삼성 노사 문화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다. 막 석방된 이재용 그가 삼성 왕국의 이병철·이건희라는 두 별에 이어 또 다른 별이 되어 명실상부한 삼성(三星)으로 뒷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기업사에 기록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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