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는 등불 같은 공간입니다."
포털사이트 장소 후기로 누군가 남긴 글이 적확하게 와 닿은 건 이곳이 포항 동네책방에서는 시조새 격이기 때문이었다. 대구의 '더폴락'만큼 포항에는 2015년 문을 연 달팽이책방의 존재감이 명확했다.
책방지기는 김미현 씨다. 그는 독립출판물을 많이, 그리고 주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애린왕자', '포포포' 같은 포항지역 독립출판물 제작자의 책은 따로 표시해 진열해두고 있었다. 품절되거나 절판된 독립출판물은 열람용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작은 갤러리도 있다. 갤러리의 문턱을 낮춘 곳으로 무료로 대관한다고 했다. 포항과 경주 등 지역의 화가들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했다. 책방을 찾은 이들이 가볍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독립출판물이 책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림책, 문학서적, 철학서적 등도 갖추고 있었다. 그것도 인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갓 제본된 듯한 신간들이었다. 신간이 별로 없다며 투덜댈 빌미를 주지 않는 곳이었다.

다양한 책들에 정신이 팔려 금방 알아채기 힘들었지만, 이곳에는 화분이 많았다. 택배로 배달된 원예용 흙 포대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화분들은 각자의 공간에 제자리인 양 찾아가 앉아있는 듯했다. 책방지기 김 씨는 식물에 진심인 편이라고 했다.
식물에 감탄하며 입을 벌리다 달팽이책방이 가진 '뜻밖의 내공'을 놓칠 뻔했는데, 의외로 '홍차'가 이곳의 비기였다. 여느 동네책방들이 커피나 가벼운 음료를 다루는 건 필수에 가까운 것인지라 눈여겨보질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이 책방은 뭔가 달랐다. 방역수칙 탓에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었기에 맡지 못한 향이었다. 은은한 홍차 향이 책방 가득 맴돌고 있었다. 뒤늦게 메뉴판을 읽었다. 다르질링, 기문, 우바, 아쌈, 레이디그레이, 마쌀라자이…. 홍차 종류만 무려 22가지나 된다. 이쯤 되면 원래 홍차 전문점인데 책방으로 확장한 건지, 책방이 홍차 전문점으로 확장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아무래도 책방으로서 공력은 독서모임에서 나온다. 세계사 읽기, 영어원서 읽기, 페미니즘 에세이 쓰기, 그림책 모임, 최장수 모임인 시 쓰고 읽기 모임 등 7가지 모임이 운영되고 있었다.
여기서 달팽이책방은 한술 더 뜬다. '달팽이트리뷴'이라는 월간지를 500부씩 발간한다. 2015년 4월에 1호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68호를 냈다. 등록된 정기간행물이 아닐 뿐, 콘텐츠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서평 등이 주로 실린다. 내용을 읽어보니 웬만한 문예지 뺨친다. 세상은 넓고, 숨은 고수는 많았다.
포스텍 정문에서 가까운 달팽이책방은 처음 문을 열었던 그 자리 그대로다. 다만 달팽이책방이 중심이던 거리는 특색있는 술집과 밥집, 카페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달팽이책방이 이곳에 문을 연 지 2년 뒤인 2017년부터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시감이 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도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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