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조금 힘들다고 느꼈던 어느날 밤, 갑자기 우리 집에 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 내킨 김에 정기 꽃 배달 서비스를 신청해버렸다. 나 스스로도 희한하다고 느꼈던 것이, 꽃을 딱히 싫어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좋아했던 적 역시 없는 나였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을 때에도 선물한 이의 마음이 고마울 뿐 꽃 자체에 기뻤던 적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왜 난데없이 꽃이 보고 싶어진 건지. 휴대폰 사진첩에 꽃 사진이 가득하면 나이가 든 거라던데 내가 늙어버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를 봐도 그랬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집에 식물을 하나씩 늘리더니 옥상을 거의 수목원처럼 만들어버리지 않았던가.
늙어가는 엄마에게는 예쁘고 귀여운 것도 참 많아졌다. 이름 모를 작은 열매를 보고도 "아이고 귀여워라", 가지에 달린 풋고추를 보고도 "얼마나 예쁘노?", 심지어 반찬으로 먹으려고 데쳐놓은 시금치를 보고도 "아이고 예뻐라" 한다. 그 덕분에 나도 장단을 맞추기 위해 "맞네, 귀여워라", "맞네, 색깔이 참 곱네"라며 온갖 것을 귀여워하고 예뻐해야 했다.
꽃 배달을 신청하고 나서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엄마가 키워온 화분 속 작은 식물들이 그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통통하게 살 오른 잎사귀가 투명한 연둣빛을 띠는데 그 어떤 보석이 이보다 예쁠까. 그걸 보고 있자니, 예쁘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자식 먹일 양념이며 채소 등을 바리바리 챙기고 있는 엄마에게, 작은 화분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이, 그거는 됐고, 나 이거 주면 안돼?"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래라"라며 식물을 내어준다. 선물로 받은 식물들을 몇 번이나 죽였던 전력이 있는 나였다. 이번엔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분갈이를 하고 있는 엄마의 등에 대고 비결을 물어봤다.
"엄마, 내가 키우는 식물은 다 비실거리다 죽는데 엄마가 키우는 건 왜 이렇게 쌩쌩해? 나도 배운 대로 물 주고 빛 쬐어주는 건 다 했거든."
엄마는 계속 손을 움직이며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놔두고 물만 주면 제대로 사는 줄 아나? 오늘은 좀 어떤가, 어디 상한 데는 없나 늘 신경을 쓰고 살펴야 되는 거지. 생명 키우는 거는 정성이다. … 너거도 다 이래 키웠다."
생명을 키우는 것은 정성이라는, 나 역시 그런 정성으로 자라난 생명이라는 엄마의 말이 내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예전에 비해 조금 더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 덕분인지, 우리 집으로 이사온 작은 식물은 아직까지는 잘 자라고 있다. 괜히 번거롭기만 하지 않냐고? 생명을 키우는 데 들이는 정성이 고되기만 할까? 정성을 쏟는 만큼 더 예쁘게 여겨지고, 예쁘게 여겨지니 더욱 정성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들인 정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생명이 주는 기쁨은 크다. 오늘도 나는 베란다문을 열고 나의 작은 꽃밭 속 생명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잘잤어?" 마음 가득 행복감이 차오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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