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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택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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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A는 이제 마흔에 접어든 중견 성악가다. 대구에서 대학을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수년간 유학 생활도 했다. 유학 가기 전부터 가진 소리가 좋다는 평을 들은 유망주였다. 유학 기간에도 열심히 노력해 몇몇 콩쿠르에서 입상도 했다. 이쯤 되면 귀국 후 장밋빛 인생이 펼쳐져야 할 텐데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이 정도 커리어를 가지고 귀국하는 성악가들의 수에 비하여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무대는 상대적으로 적다. 대한민국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성한 무대를 열고 있다는 대구임에도 현실은 그렇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대구의 자원이 풍부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다. 그의 노래는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도 뭔가 깔끔하지 않다. 즉, 완성도 면에서 2% 부족하다는 말이다.

대학도 그렇지만 짧지 않은 유학 기간은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A는 어찌어찌 그런 것을 잘 감당했다. 게다가 유학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다.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좋은 시절을 보낸 뒤에, 부푼 가슴을 안고 귀국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심심치 않게 부름을 받아 무대에 오르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확고한 인정을 받지 못한 것 같아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다.

어쩌면 A는 먹고살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면 음악을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도대체가 지금은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시국이라 상황이 더 어렵다.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음악을 정말로 사랑하기에 옆길로는 눈길도 줘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뭘 어찌해야 할 바도 모른다.

물론 더 큰 이유가 있다. 아직도 가슴속에는 음악에 대한 뜨거운 불길이 가득하기 때문에 절대 단념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매일 매순간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조금은 가난하더라도 노래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한국은 예술에 있어서 소비 국가인가? 생산 국가인가? 나는 분명히 소비 국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비 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소비자가 상품(예술)을 선택하는 데 대단히 까다롭고 기준이 높다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선택받기 어렵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대를 통해 성장한다기보다는 소비되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

이를테면 이렇다. 유럽에서는 극장 무대에 오르려면 엄정한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바로 A처럼 좋은 소리를 갖춘 성악가를 캐스팅해서 연습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여주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무대를 완성하는 수많은 요소마다 전문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즉,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여러 사람이 있기에 이런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예술 생산 국가는 아티스트를 대단히 존경한다. 시스템뿐 아니라 애정으로 예술가를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A와 같은 다수의 자원을 잃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소중한 상품(?)이 될 것인가는 무엇보다 예술가 본인의 노력에 달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예술문화 역량을 키우는 우리의 시스템 구축과 예술가를 애정과 존경으로 대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지면 우리는 사라져 버릴 뻔한 기로에 있던 훌륭한 예술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으며 A 역시 이런 시절을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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