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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지음/ 민음사 펴냄

박서련 소설가. c)이현준
박서련 소설가. c)이현준
박서련 지음 / 민음사 펴냄
박서련 지음 / 민음사 펴냄

강원도 철원 출신의 대학 1학년생이던 만 19세 박서련 양이 제28회 계명문학상을 받았을 때가 2008년이었다. '다소 타히티적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성석제 작가는 심사평에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정황, 어항이 있는 방에서의 생활, 고갱의 그림과 제목, 정신과의 상담 과정이 생생하다"고 썼다. (대학문학상이 대수냐, 라는 이들에겐 역대수상자들을 한번 훑어보길 권한다.)

같은 해 경향신문은 '10대 문청들이 부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이름을 또 거론했다. "10대 시절 각종 문학상과 백일장을 거치며 전국의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화제의 대상이다"라며.

그로부터 14년 뒤, 떡잎부터 남달랐던 그는 소설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을 낸다. 지난해 초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으로 묶인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가 출간된 바 있으니 두 번째 소설집이다.

산문집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최근 엮어내기도 했다. 기실 2015년 단편 '미키마우스 클럽'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은 뒤 7년 동안 '체공녀 강주룡' 등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썼고 단편소설로 참여한 엔솔러지도 있다. 소싯적 얘기긴 하지만 시까지 잘 써 철원여고 3학년 때인 2007년 문학동네가 주최한 청소년문학상 대상도 받았다. 장편소설로 2018년 한겨레문학상, 단편소설로 2021년 젊은작가상을 받았으니 쓰는 기예는 공공연히 입증한 터다.

대구의 한 PC방에서 학생들이 PC게임을 즐기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의 한 PC방에서 학생들이 PC게임을 즐기고 있다. 매일신문 DB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작가는 모든 단편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운다. 게임 고수가 된 엄마, 아이돌그룹의 매니저를 맡은 엄마, 성정체성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목사의 부인, 시어머니 여행 시중을 드는 며느리, 치매에 걸린 엄마와 함께 사는 딸 등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세대의 편차가 있을 뿐 여성 서사다.

그에게 젊은작가상을 안긴 표제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엄마의 이야기다. 초등학생 고학년 아이를 둔 엄마다. 아이가 게임을 잘 못해 라이벌 친구에게 뒤진다는 판단으로 엄마는 게임과외선생을 붙여주려 한다. 아이를 가르치려면 그 세계를 알아야한다며 우연히 잡은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고수의 싹수를 보이는 엄마는 이내 그 세계를 평정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엄마'는 사용금지어, 즉 욕설임을 알고는 승자의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중국 여행 상품에 당첨됐는데 시어머니가 같이 가겠다고 나서 졸지에 '고구마 백만 개 삼킨 여행'이 된 여정을 소재로 삼은 작품 '곤륜을 지나'는 며느리의 시점이다. 은근히 눈치없는 남편이 부각된다. 그 탓에 며느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가 되는데 강화길 작가의 작품 '음복'과 묘하게 겹친다.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야 알 만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긴장 관계는 '곤륜을 지나'에서도 묘사된다. "우리 엄마 원래 그래"라는 네 음절이 얼마나 철없는 말인지 일갈하는 듯하다.

칭따오 라오샨 풍경. 자료 출처=chinadiscovery.com
칭따오 라오샨 풍경. 자료 출처=chinadiscovery.com

작품 '기미'의 주인공은 그의 작품들 속 최연장자로 보인다. 학원 통학차량을 운행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를 봉양하고 있는 중년의 미혼여성 원희가 주인공이다. 엄마를 잘 돌보려면 방문에 자물쇠를 채워야 하고 억지로라도 먹여야 하지만 학대라는 실눈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원희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윤리, 인간으로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작품 '그 소설'과 'A Queen Sized Hole'은 여성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싶어 여러 차례 검색해보기도 한다. 헛일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박서련 작가의 솜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두 작품도 빠뜨리지 말고 읽을 일이다. 25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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