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일단 실컷 걱정하라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내일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연말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다. 곧 졸업인데 아직 진로를 못 정해서 걱정이다. 주말에 나들이 갈 예정인데 한파가 온다니 걱정이다. 나이는 들어가고 결혼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지금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노후 준비를 어쩌나 걱정이다….

이런 걱정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남들은 한두 번 하고 지나치는 일상의 걱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면? 그 걱정이 특정 주제(건강, 안전, 위생 등)에 국한되지 않고 접하는 상황마다 끊임없이 만들어진다면? 일단 본인이 매우 괴롭다. 주변 공기는 늘 불안으로 가득 찬다.

걱정은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막상 그날, 그 순간에는 아예 벌어지지 않거나 벌어져도 생각했던 만큼 비극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후에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하나의 걱정이 지나가면 다음 걱정이 온다. 세상은 넓고 걱정할 것은 많다. 흔히 '걱정병'이라고 말하는 이것의 공식 진단명은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이다. 그야말로 걱정과 불안이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다.

걱정 좀 한다는 사람들도 사회생활은 그럭저럭 하는데 사회생활에 지장이 크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하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늘 힘들고 피곤하다. 신체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각이 많기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크다. 간혹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어도 곧 걱정과 불안이 닥쳐올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 행복할 때도 이후에 불행이 오면 불행감을 더 강하게 느낄 것 같아 편안하게 행복해하지도 못한다.

이들은 어떤 일의 결과가 나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아예 일을 벌이지 않으려 하고 도망 다닌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걱정을 한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듣고 싶은 말은 '걱정하지 마라'가 아니다. 그 말은 소용도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할 이유나 필요가 없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것 없다. 속만 터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관계까지 나빠진다. 사람 다 비슷하다.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 주지 않는 사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는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사람, 서로가 싫다. 그런데 이렇게 쓸모없고 힘들어만 보이는 걱정을 왜 계속 하게 되는 것일까? 믿기 어렵겠지만 여기에는 분명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걱정을 하는 그 사람에게 걱정은 분명 어떤 기능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나마 내가 걱정을 했기 때문에 불행이 이 정도에 그쳤지. 걱정도 문제 해결의 한 방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걱정이니까 걱정이라도 해야지….' 걱정하길 참 잘했다 칭찬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걱정병을 가진 사람에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한 걱정병 고수(?)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하루 중 일정 시간(정하기 나름이지만 15분 이하를 추천)을 정해 걱정을 몰아서 실컷 하라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걱정 목록을 쓰고 다음 날 그 걱정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걱정병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약속을 잘 지키고 선량한 경우가 많아 숙제를 내어 주면 착실하게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걱정하는 시간이 조금, 걱정의 목록이 약간 줄어져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본다. 걱정병을 가진 이들이여! 일단 실컷 걱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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