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콘텐츠로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지금의 소셜 매체는 파급력이 크다. 하지만 전통적인 매체인 '출판'도 여전히 건재하다.
사실 글을 써서 이름을 얻는 방식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500여 년 전 독일 출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파워라이터'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에 힘입어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 책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역사학과 교수가 경제적 관점, 특히 출판 산업의 관점에서 루터를 다룬 전기다.
루터는 1517년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하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앞서간 저술가이자 뛰어난 감각의 출판편집인이기도 했다.
독일 비텐베르크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한 곳으로 종교개혁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후 반세기가 지난 1502년까지 인쇄기가 단 한 대도 없던 출판계의 변방이었다.
그런 비텐베르크를 출판업 중심도시로 만든 이가 루터였다. 그는 서른 때까지 책을 출판한 적이 없었지만 95개 논제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자 저술과 인쇄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소수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에서 벗어나 독일어로 저술하는 결단을 내렸다. 장황하고 복잡한 신학적 글쓰기를 버리고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사용하자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루터의 글쓰기 자체가 막강한 브랜드가 된 것이었다.
루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 가치에 주목했다. 책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는 평생 인쇄소를 오가며 활자체, 표지 디자인, 용지 크기, 책 중량 등을 직접 점검했다. 원고는 지역 내 인쇄소에 고루 배분했다. 덕분에 비텐베르크는 1540년대에 인쇄소를 다섯 곳이나 두게 됐고, 16세기 말엔 출판 중심지로 성장했다.
자칫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종교개혁 이야기와 15, 16세기 유럽 인쇄시장 상황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528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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