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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사회부 최혁규 기자

최혁규 사회부 기자
최혁규 사회부 기자

인턴 기자 시절, 대구시청 앞에서 열린 장애인권단체 집회는 인상 깊었다. 그날 마주친 장애인들이 내가 살면서 마주친 장애인들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를 출입하며 뒤늦게 알게 됐다. 이들은 존재하지 않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장애인 거주 시설에 갇혀 있거나 혹은 이동권을 제약하고 돌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설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이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을.

50년 전, 뉴욕주 남동부 캐츠킬산맥에서 열린 '캠프 제네드'에 지도교사로 참여한 미국의 존 오코너가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제가 아는 스모 선수만큼 없었어요."

1971년 캠프 제네드엔 10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견 없이 스스로 한데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캠프에 참여한 이들은 장애인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스스로의 경험을 참가자들과 공유했다. 문제는 장애인들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자아를 억압하는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캠프 지도교사로 참여한 주디 휴먼은 이후 장애인권단체 '디스에이블드 인 액션'의 대표가 되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주디와 단체는 '탈시설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탈시설 후 자립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섹션504'(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주디와 동료들이 거리를 막고 건물을 점거한 끝에 마침내 1977년 법안이 시행됐다. 연방 자금이 투입되는 병원·교육기관·교통수단 등에서의 장애인 차별 금지가 명문화됐다.

2022년 현재 한국 사회는 1971년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8일 현재 대구 동구청 앞에는 지난해 또 다른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발생한 장애인 인권침해 해결을 요구하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48일째 농성 중이다.

이들은 시설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구시와 동구청에 탈시설 정책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50년 전 주디와 동료들을 태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당시 미국에서 점거 시위를 막기 위해 뜨거운 물을 끊고 전화선을 끊었다면, 동구청은 집회를 막기 위해 전기를 끊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얼마 없었다. 주디와 동료들이 뉴욕 대로변을 막았던 것처럼, 시민들에겐 당연히 느껴진 이동권이 어찌 보면 특권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하철을 막고 나섰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보이지 않던 이들이 본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이 일상의 균열을 일으키자 분노한 건 아닐까.

2020년 기준으로 대구시 전체 인구의 약 5% 정도가 장애인이다. 하지만 20명 중 1명이 장애인임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 한국 사회와 국가가 여전히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고 시설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 문제에선 이 명제를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장애인들이 거리와 지하철을 막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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