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이다. 선배 시인께서 "복날에는 삼계탕이지! 범어동 근처 잘 하는 삼계탕집을 예약했으니 그리 오라"고 연락해오셨다. "저는 물에 들어간 닭은 못 먹습니다"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더운 여름 몸보신 요량으로 정한 마음이 짐작되어 그러겠노라 답을 보냈다. 그날은 초복이라 예약을 하는 게 좋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과 마주한 사람들이 식당에 가득했다.
테이블에 앉자 내 앞에도 팔팔 끓는 뽀얀 국물의 삼계탕이 도착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몰라 소금을 덜어 국물에 숟가락을 담그고 있었다. "아이구, 먹어보고 소금을 넣어요." 내게 소금통을 당기며 선배 시인은 웃었다.
내가 삼계탕을 못 먹는 이유는 어릴 때 닭을 길렀기 때문이다. 닭을 비롯해 토끼, 염소, 개, 소를 길렀다. 할머니는 특히 닭들에 애정을 쏟았다. 아침이면 할머니 문 열고 나오는 소리에 닭들은 우르르 닭장을 박차고 나와 마당 앞에 일렬종대로 모였다. 할머니는 일일이 닭의 이름을 불러주고 저녁 내 잘 잤냐고 묻곤 했다. 당시 우리 집 근처에 낮은 산이 있었는데 오소리라는 놈이 밤마다 나타나 꽁꽁 싸맨 닭장을 비집고 들어가 단잠에 든 닭들을 훔쳐 달아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새끼 닭을 잃어버린 어미를 무릎에 앉혀 날개를 쓰다듬어 주고 손바닥에 모이를 담아 먹이곤 했다.
암탉은 그런 할머니의 손길 덕분인지 알을 잘 낳았다. 할머니가 마련해준 알 낳는 자리를 두고, 암탉은 엉뚱한 곳에 알을 낳기도 했는데 이상한 일은 암탉은 알을 낳고 나면 '꼬기오'라며 알 낳은 자리를 알려주곤 했으니, 할머니와 닭은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때도 어쩌다 닭을 잡아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닭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암탉 말고 장닭으로 태어나거라. 아니지. 다음엔 닭 말고 다른 거로 태어나거라.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온단다. 미안하다"며 인사를 하고 닭을 잡았다. 닭을 잡아 배를 갈라놓으면 내일 아니 글피쯤이면 달걀이 될 알들이 소복 들어있는 것을 봤다. 감자알 같은 알이 닭의 뱃속에 가득 들어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나는 닭의 부위가 느껴지는 닭발, 울대, 날개, 다리는 먹지 못한다. 닭을 먹을 때는 닭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저건 풀밭을 헤치던 발이지, 퍼덕이던 날개, 꼬끼오 울던 울대지 그런 생각이 들어 닭이 넘어가지 않는다. 겨우 순살 치킨이나 맛보는 정도는 되지만 닭이 식재료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이런 물활론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애호가가 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묵념하듯 뚝배기를 들여다보니 식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선배 시인이 숟가락을 밀어준다. 뱃속에 인삼과 찹쌀을 미어터지게 넣은 채 두 다리를 묶여 뒤집혀 있는 닭. 입맛이 별로 없다는 핑계를 대고 국물만 떴다. 아! 이를 어쩐다. 우물쭈물하며. 이런 것도 못 먹으면 시인 못 된다는 선배 시인들의 놀림에도 난 시인이 되었고 아직 물에 들어간 닭은 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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