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 우리 학교는 작은 지구촌] "알록달록 친구들, 무지개 닮은 우리 반"

다문화 학생-외국인가정 자녀 급증…"작은 지구촌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어울리는 법 배워요"
논공초, 러시아권 이중언어교실…선생님은 러시아 결혼이주여성
신당초, '5분 모국어 알리기 시간'… 학급 내 다문화학생 거리감 좁히기

11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초등학교 1학년 2반, 다문화 학생(베트남)인 나은 양이 친구에게 고마웠던 점에 대해 한국어로 발표하고 있다. 이 학급의 학생 14명 중 7명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베트남 등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1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초등학교 1학년 2반, 다문화 학생(베트남)인 나은 양이 친구에게 고마웠던 점에 대해 한국어로 발표하고 있다. 이 학급의 학생 14명 중 7명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베트남 등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다문화학생이 한 학급에서 절반 이상을 넘는 건 더 이상 '시골만의 일'이 아니다. 대구에서도 산업단지 주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다문화학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어가 전혀 안 되는 외국인가정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활발히 소통할 수 있도록 이중언어교육과 문화 교류 활동들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논공초교와 신당초교 학생들은 어른들보다 빨리, 작은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가고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서로의 언어로, 고마움 표현하는 아이들

11일 오전 10시쯤 대구 달성군 논공초등학교 1학년 2반 교실. 노란색 아오자이(áo dài)를 입고, 머리엔 논라(Nón Lá)를 쓴 나은 양이 칠판 앞에 섰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듯한 눈빛으로 나은 양을 바라봤다. 다문화학생(베트남)인 나은 양은 친구인 아은 양에게 고마웠던 점을 한국어로 말했다.

나은 양과 아은 양은 7살에 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다. 이름이 비슷해 선생님은 종종 나은 양과 아은 양의 이름을 바꿔 부르곤 했다. 선생님이 실수할 때마다 둘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고, 그렇게 서서히 친구가 됐다.

나은 양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오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한국어 노출이 적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쓰는 데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은 양은 유치원에서도 주로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은 양과 친해지면서 한국어도 많이 배웠다.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은 양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서서히 나은 양의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둘은 논공초 1학년에 입학한 후에도 같은 반이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공부가 더 어려워졌다. 나은 양은 특히 국어와 수학 과목에서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 그럴 때 아은 양이 단어 뜻을 가르쳐주고 격려를 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이날 나은 양의 발표가 끝나자, 이번엔 아은 양의 발표가 시작됐다. 아은 양은 나은 양과 함께 지내면서 느낀 점을 베트남어로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아은 양은 나은 양과 함께 지내며 베트남 언어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지난해 9월부터 나은 양과 함께 이중언어발표대회에 참가하고자 베트남어를 익혔다.

아은 양은 베트남어로 "칭찬과 격려가 우리를 더 용기 있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다"며 "앞으로도 우리 반에서 한국어를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줘서 용기를 갖게 해주고 그러면서 서로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초등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이 친구의 장점을 칭찬하며 서로의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있다. 이 학급의 학생 14명 중 7명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베트남 등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1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초등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이 친구의 장점을 칭찬하며 서로의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있다. 이 학급의 학생 14명 중 7명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베트남 등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 알록달록 친구들, 무지개 닮은 우리 반

Я очень люблю радужно сияющий мой класс.(나는 무지갯빛 우리 반이 정말 좋아요)

러시아에서 태어나 3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온 알리나(8) 양은, 자신의 반이 알록달록한 '무지개'를 닮았다고 했다. 실제로 논공초 1학년 2반엔 러시아,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다. 2반 학생 14명 가운데 절반인 7명이 다문화학생이고, 그중 5명은 외국인가정 학생이다.

최근 4년간 논공초의 전체 학생 중 다문화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그중 특히 부모님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가정 학생이 최근 급증했다.

논공초 다문화학생 비율은 2018년 19.3%에서 지난해 31.6%로 높아졌다. 전교생 수는 2018년 212명에서 지난해 202명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다문화학생은 41명에서 64명으로 늘었다.

논공초가 있는 대구 달성군 논공읍은 '논공공단'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달성산업단지가 있다. 최근 달성산단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가 대구테크노폴리스와 대구국가산업단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그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논공초와 북동초 등 달성산단 인근 초등학교에 외국인가정 학생이 늘었다.

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 외국인가정 학생이 늘면서, 이중언어교육의 중요성이 커졌다. 논공초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이중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논공초는 특히 러시아(9명)를 비롯해 카자흐스탄(14명)과 우즈베키스탄(10명), 타지키스탄(2명), 키르기스스탄(1명) 등 러시아어권 나라 출신 학생이 다문화학생 64명 중 56.2%(36명)를 차지한다.

그래서 모국어가 러시아어인 외국인 학생과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이중언어교실이 이뤄지고 있다. 다문화학생과 일반학생이 이중언어(러시아어)를 활용해 한국어 교육을 받으며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 선생님은 러시아 결혼이주여성이라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입학 초 언어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학생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도 진행한다.

이 학교의 '다 어울림 동아리'는 다문화학생과 일반학생이 함께 예술 문화교육을 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동아리 활동 신청 때부터 다문화학생 1명과 일반학생 1명이 짝을 짖도록 했다. 서로 짝을 지어 클레이용품, 양초 만들기 등 체험활동을 진행하고 대구 명소를 탐방하며 언어·문화 교류가 이뤄지도록 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는 다문화학생의 이중언어 강점을 개발하고 자긍심을 키워주기 위해 대구시교육청이 개최하는 이중언어말하기대회에서 드러났다. 논공초는 2020년 1명이 우수상을, 지난해 3명이 각각 우수상, 특별상, 장려상을 수상했다.

신당초교 3학년 2반의
신당초교 3학년 2반의 '5분 모국어 알리기 시간' 운영 풍경. 신당초교 제공

◆ '다름'을 존중하는 리더로 자라나다

대구성서공단 인근의 신당초등학교는 대구에서 일반학생보다 다문화학생이 더 많기로 유명하다. 신당초엔 베트남과 몽골, 캄보디아,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러시아, 일본,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인도, 페루 등 13개 나라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공존한다.

신당초 학생 중 다문화학생 비율은 2018년 49.7%(82명)에서 지난해 2021년 65.4%(100명)로 상승했다. 논공초와 마찬가지로 다문화학생 중 특히 외국인가정 학생이 2018년 24명에서 지난해 41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신당초는 다문화학생과 일반학생들이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나아가 서로를 존중하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베트남, 몽골 이중언어강사가 진행하는 이중언어교실 수업을 통해 일반학생과 다문화학생들이 이중언어 능력을 키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반 학생들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활동들도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다양한 다문화학생들이 있던 3학년 2반은 각각 다른 문화를 가진 학생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활동을 고안했다. 학생들이 매일 아침 돌아가면서 자신의 어버이 나라 언어를 가르치고, 친구의 어버이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5분 모국어 알리기 시간' 활동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국으로 전학 온 다문화학생이 자신의 어버이 나라와 한국 양쪽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2명의 친구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 날개가 돼 적응을 돕는 '날개 친구 활동'도 반응이 좋았다.

신당초 선생님은 "학교 주변에 성서산단이 있어 다른 학교보다 다문화학생 수가 많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새롭게 입학하는 편입이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줄었지만, 기존의 다문화학생이 많아 비율이 높게 유지된다"며 "특히 베트남과 몽골의 다문화학생이 많은데, 자연스럽게 특정 국가 출신의 공동체가 형성된 영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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