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의 '개구리'다. 이리저리 뛰는 개구리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다. 물감과 물을 한 붓에 묻혀 농담을 조절한 단 붓질로 가지각색 형상을 드러내며 개구리를 실감나게 한 필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붓이 움직이는 순간 안료가 종이에 스며들며 일체가 되는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은 찰나를 영원히 고정시킨 강력한 울림을 준다.
천경자를 시어머니로 20여년 모셨던 유인숙은 이런 그림에 대한 천경자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신들린 것처럼 한 차례도 붓을 놓지 않고 단숨에 수십 마리를 그린다."
그렇게 단숨에 여러 장을 그린 후 몇 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찢어버렸다. 천경자는 맏며느리 유인숙의 친정아버지 회갑연에 이렇게 그린 그림을 들고 나타났다. 펼쳐 보니 환갑에 맞춰 61마리의 개구리를 그린 그림이었다. 순식간에 그려낸 개구리그림은 천경자가 지인들의 위한 선물로 즐겨 그린 소재이고 기법이다.
천경자는 그림을 오랫동안 천천히 그렸다. 다작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한 작품을 몇 달씩 그리며 시간을 두고 붓질과 생각을 화면에 축적시키는 방식으로 창작했고, 어떤 작품은 최후의 완성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미 완성한 작품을 고쳐 그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액자를 해서 벽에 걸어놓았다가도 액자와 그림을 분리해서 그림을 다시 수정하기도 하고, 사인했던 것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을 쏟은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 대단했다.
그러나 화가도 사회의 관계망 속에 있는지라 자신의 그림을 선물해야할 일이 있기 마련이다. 친인척이나 미술계 관계자, 거절하기 어려운 권력자 등이다. 천경자의 개구리그림은 하나의 직업세계에 속하는 참여자로서, 가족관계의 한 구성원인 화가로서의 그림이다. 대가들은 성의를 보여야할 때를 대비해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해 놓는다.
더구나 천경자는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은 인기화가였다. 천경자의 인기는 그녀가 수필로 자신을 알린 글 쓰는 화가였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원래는 삽화를 그리다 나중에는 글까지 쓰게 됐다.
자기 직시의 대담한 솔직함과 감수성 넘치는 문체로 많은 공감을 받은 천경자는 한국여류문학인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던 수필가였다. 1968년 '여류문학' 창간호 표지화를 그렸다. '여류'라는 접두사가 자연스러웠던 시대에 천경자는 화가이자 수필가로서 4명의 자녀와 부모를 혼자 부양한 여성가장인 한 사회인이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 즈음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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