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8시 40분쯤. 울진군 북면 제1투표소로 쓰이고 있는 부구초등학교에 이재민을 태운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8명의 이재민 유권자들은 한 손에 임시신분증을 들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20여 분 동안 차례로 투표장에 들어섰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투표소에 들어서는 고령의 유권자도 있었다.
울진군 북면 신화리의 전호무(85) 씨는 "집도 논도 모두 타버려 비록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투표는 국민의 의무다. 당연히 하러 와야 한다"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이러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투표소에서 산불 대피 이후 오랜만에 이웃 주민들과 만난 이재민들은 간만에 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집이 모두 타버린 일도, 대피소 생활의 힘든 경험도 허탈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거리에 올랐다.
이번 산불로 평생을 살아온 기와집과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남두호(70·울진군 북면 고목리) 씨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지만, 투표를 통해서라도 희망을 담아보고 싶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울진의 고통을 꼭 돌아봐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날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각 마을별 투표소로 향한 이재민들은 현재의 고통을 새 정권이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길 바라는 소망을 투표용지에 담았다.
선관위는 오지마을 교통편의 지원을 위해 평소 16대의 투표소 이송용 버스차량을 울진지역에 지원해 왔으나 이번에는 특별히 4대(대형 2대·중형 2대)를 추가해 이재민들을 실어나르기로 했다.
추가된 이재민 지원용 버스는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울진읍 울진초등학교·울진중학교·울진군청, 죽변면 죽변초등학교, 북면 부구초등학교·하당출장소·한수원사택 등 총 7개 투표소를 오전 8시와 오전 10시 두차례에 걸쳐 왕복 운행했다.
울진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약 20명의 이재민들이 지원용 버스를 타고 마을별 투표소에 간 것으로 파악된다. 500여 명의 이재민 숫자를 감안할 때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이지만, 사전투표율이 워낙 높아 이재민 유권자 대다수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선관위는 보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울진 사전투표율을 살펴보면 총 선거인수 4만2천282명 중 1만8천299명이 참여해 43.28%를 기록했다. 19대 대통령 선거 때보다 무려 11.53%가 높은 수치이다. 지난 4일부터 산불이 발생해 피해를 입혔지만 여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재민 유권자들은 이날 오전 투표를 모두 마치고 덕구온천 등 새로운 거주시설로 옮길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각 투표소에서는 다른 주민들의 양해를 구해 이재민들이 먼저 투표장에 들어설 수 있도록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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