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휩쓸고 간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곡1리.
뒷동산도 정든 보금자리도 다 잿더미가 됐습니다.
이제야 내리다니 반가운 봄비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날, 솔가리는 불덩이가 돼 휙휙 날았습니다.
산을 넘어 밭두렁으로, 닥치는 데로 삼켰습니다.
손 쓸 틈도 없이 겨우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산골이지만 평생 산불을 몰랐던 이 마을에서만
가옥 41채, 창고 78동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애써 키운 뒷동산 솔밭이 졸지에 불쏘시개로,
이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숲을 원망하랴. 나무는 잘못이 없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킬 뿐,
불덩이를 나른 주범은 초속 25m 강풍입니다.
사나워진 바람은 못난 운전자들이 내 던지는
담배꽁초 불씨마져 놓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울진군 북면 두천리 도로변에서 시작된 불은
무섭게 내달려 원전을 위협하다 한나절 만에
15km나 떨어진 삼척 LNG기지까지 탐했습니다.
진화대의 필사적 저지에 주춤하나 싶더니 변덕스런
봄바람을 잡아타고 다시 남하, 또 내달렸습니다.
봉산(封山). 1680년 숙종이 조선의 나무라며
벌채를 금한 덕에 200년 묵은 황장목이 8만 그루,
쭉쭉 뻗은 금강송 군락지가 백척간두에 섰습니다.
지독한 가뭄에 바삭 마른 낙엽, 깍아지른 산허리.
해병대·특전사가 총대신 삽으로 샅샅이 뒤졌습니다.
2만923㏊(울진 1만8463㏊·삼척 2460㏊) 산림이,
주택 319채, 농축산·공장·창고 293곳이 불탔습니다.
불길은 22년 전 동해안 산불때보다 더 빨랐습니다.
불과 30여 시간 만에 1만㏊가 넘게 사라졌습니다.
헬기·소방차가 있는 데로 다 붙은, 힘든 사투였습니다.
눈 한 송이 비 한 방울 구경 못한 50년 만의 가뭄 .
'솔솔부는 봄바람' 도 옛말. 봄에도 바람은 더 세져
대구 가창, 강릉·동해·영월 등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화마는 예전보다 더 무섭고 더 사나워졌습니다.
우거진 숲. 산불이 나면 이제는 잡을 길이 없습니다.
마침내 울진에서 화마가 멈췄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비 한줄기에 막을 내렸습니다.
213시간. 밤낮으로 집어 삼킨 '9일'이었습니다.
역대 최대 산불. 화마는 그를 기후위기라 경고합니다.
적막한 마을, 봄비에 개구리만 저리 시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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