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조선의 뒷담화

김경민 지음/ 책비 펴냄

KBS 대하사극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매일신문 DB

뒷담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남을 헐뜯는 행위. 또는 그러한 말'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좋지 않은 건 누구나 알지만, 사람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은밀히 즐긴다.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옛말이 있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뒷담화는 사람들의 즐길거리인 모양이다.

지은이는 조선을 뒷담화의 대상으로 들이댔다. 그리고 이전에 쉽사리 찾기 힘든 형식을 취했다. 소설 형식을 띄는 역사서라 할 수 있겠다. 역사 소설이라 하기에는 대부분 내용이 역사 문헌에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를 강조라도 하듯 각 에피소드 마지막에는 출처를 밝히고 있다.

첫 부분부터 조선의 건국과 관련해 '뒷담화'(?)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18대 고조부인 이인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이 사모하는 한낱 관기 때문에 전주를 버리고 삼척과 의주를 거쳐 원나라로 귀순한다. 그는 당시 원나라로부터 5천 호를 다스리는 '다루가치'가 되었고 이후 대대로 이인사 후손은 천호의 벼슬을 세습했다. 그러다가 이성계와 그의 아버지 이자춘이 반원정책을 편 공민왕과 손을 잡고 고려에 다시금 진출했고 결국 이성계는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건국한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조선의 왕 중에 후세에 이야깃거리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태종에 관한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는다.

태종은 조선 초기 왕권을 강화하고 세종이 조선 최고의 왕으로 거듭나게끔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복수의 화신이었다. 왕이 된 뒤 자신의 정적이자 계모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을 성 밖으로 이장한 데 이어 나중엔 봉분마저 없앤다.

또한 자신의 외척, 특히 왕비 민씨 일가를 초토화시킨다. 왕비 민씨의 남동생들을 외방으로 내쳐 끝내 자결하게 만들고 4명의 처남도 모두 죽이는 등 잔인한 면모가 있었다. 때문에 왕비 민씨는 한때 남편인 태종을 왕으로 만든 대표적인 일등공신이었으나, 남편에 의해 자신의 친정이 풍비박산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세종은 한글 창제부터 과학과 농업 발전 등을 통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한편으론 며느리들로 인해 늘 속앓이를 했던 시아버지이기도 했다.

첫번째 며느리인 휘빈 김씨는 남편인 세자 향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주술을 사용했다가 발각돼 내쫓긴 데 이어 둘째 며느리인 순빈 봉씨는 7년째 아이를 낳지 못하고 궁궐 여종과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아 폐출됐다. 어렵사리 후궁의 한 명인 권씨를 세번째 며느리로 들였으나, 왕자 단종을 탄생시키고는 산후병으로 이틀 만에 요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또한 이이에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절절하고도 애틋하게 정을 나눈 기생이 있었고, 문정왕후는 매일 서릿발치는 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하다 중종의 부인이 된 후 아들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는 절대 권력자가 됐다.

이 책은 조선시대 권력자인 왕과 왕비, 재상들의 덜 알려진 비화를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돼 있다. 지은이는 그들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이야기를 뒷담화하고 있지만, 결국 조선의 권력자들도 우리처럼 인간이며 남모를 비애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은이 김경민 씨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다수의 소설과 역사물을 집필한 전문 작가이다. 그의 13번째 작품인 이 책을 집필할 당시 3차례나 원고를 뒤엎었을 정도로 스토리텔링 방식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적 인물들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전하기 위한 치열함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집필한 '연려실기술'의 내용을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물을 완성했다. 335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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