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광현 씨의 누나 고 김순단 씨

방 2개에 시댁 식구 9명이나 되는데도 대학 신입생인 저를 기거하게 해주셨죠

김광현 씨(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의 회갑 당시 김 씨 7남매가 모여서 촬영한 사진. 사진 맨 왼쪽이 김순단 씨. 가족 제공.
김광현 씨(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의 회갑 당시 김 씨 7남매가 모여서 촬영한 사진. 사진 맨 왼쪽이 김순단 씨. 가족 제공.

그리운 누님, 김순단(1930~2022)님!

2022년 3월 6일, 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정신도 맑으시고 외모도 건강하게 보여서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 몰랐습니다. 누님 가신지 1개월이 넘었는데도 생시의 기억들이 점점 더 뚜렷해지기만 합니다. 이런 마음이 좀 가라앉을까 하여 누님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1930년 5월 9일(음)', 일제 식민정치의 악랄함이 점점 더 심해질 무렵, 바로 누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김천시 어모면 남산2리는 누님 태어나신 곳, 김천역 광장에서 택시로 약 1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조용한 산골 마을입니다. 누님은 여기서 아천초등 6년을 졸업하고 19살 적, 이모님의 중매로 부산 남편을 만나 생애에 걸쳐 가히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다만, 결혼 초엽의 누님은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1949년 부산으로 시집가던 날 신혼 살림을 차린 곳은 보수동 이재민 집단거주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은 부산 바다 한 복판에 외로운 섬처럼 자리잡은 비좁은 지역으로, 거주자들은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서 나온 귀환동포 30여 가구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6.25가 터지는 바람에 전국의 피난민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어 민생은 더욱 도탄에 헤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시가의 식구가 9명이나 되어 식생활 이어가기도 어려운 데다가, 주거환경도 다다미 방 2개가 전부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큰방이고 다른 하나는 복도를 따라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햇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컴컴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대학 신입생인 내가 끼어서 기거를 하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만약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의 기거를 거절하면 나는 같이 살 수 없게 되고, 나의 대학생활도 접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다행히 가족분들이 나의 기거를 묵인해 주셨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가 한평생 농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고비를 다 넘기고, 재학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수 있었고 1961년 3월13일, 염원하던 대학(동아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장을 받게 됐습니다. 천우신조! 1960년 12월 20일에 치른 국가고시(신인 등용시험)에 합격하고 뒷날 대구시 동구청 부구청장 자리까지 지냈습니다.

그 후 누님의 형편은 점점 나아졌고 자식농사도 잘 지으셨습니다. 아들 3형제, 손자 6명을 두어 풍성한 결실입니다. 그 중에서도 장남은 국회사무처 고위직에까지 올랐습니다. 손자들도 모두 출세가도를 달려서 해사출신의 함장도 나오고 방송사 간부가 된 손자도 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내조의 공도 한평생 이어졌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1970년대 말, 서울 상도동에 '부산기화기사'란 간판을 걸고 창업한 LPG차량수리업이 대성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축복의 배후에는 윗대 어른들의 장수가 큰 밑천으로, 어머니 한분을 제하고는 어르신 모두가 8순을 넘기셨습니다.

1971년 김광현 씨 아버지(앞줄 왼쪽 다섯번째)의 회갑 당시 기념사진. 뒷줄 왼족 네번째가 김 씨의 누님 김순단 씨. 가족 제공.
1971년 김광현 씨 아버지(앞줄 왼쪽 다섯번째)의 회갑 당시 기념사진. 뒷줄 왼족 네번째가 김 씨의 누님 김순단 씨. 가족 제공.

누님! 누님 계신 그 곳 하늘나라는 만화(萬花)가 방창(方暢)이라 하셨지요. 누님! 꽃 구경 가요, 누님 누워 계신 그 곳, 경기도 이천의 좋은 땅, 6.25 참전용사 박동준(주인공의 남편) 묘 옆으로!!

누님은 평소 요양원 입원을 그렇게나 싫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소원을 들어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누님! 용서하세요. 이제 영원무궁토록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영원한 쉼터에서 편안히 쉬시기만 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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