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한 철 보내고 한 김 사그라들 때쯤, 나무 밑동에 피어난 들깨꽃. "어디서 날아왔는지 몰라도 조금 있으면 깨 송이 영글텐디, 영글면 너처럼 고수불거다. 니도 고순 냄새 풍기고 가버릴거냐. 나 죽을 때까지 여그 살어라, 살어라, 알았제?" 이사온 지 반년 만에 깊은 정이 들어버린 뒷집 할머니는 들깨꽃을 바라보며 머리 허연 그에게 '여그서 같이 살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예순 살에 깨꽃이 된 그. 고순 냄새 풍기고 가삐리고,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만 남아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을 들여다보게 됐다.
지난해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이순자 작가. 그가 쓴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청소부,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여러 일터를 전전해야 했던 노인 일자리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매일신문 홈페이지에서 누적 조회수 16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그의 얘기에 공감하고 탄식하는 대중들의 반응과 그로 인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을 수상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8월 운명을 달리했다.
치열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를 담은 유고 산문집이 출간됐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비롯해, 생의 마지막까지 삶에 분투하면서도 이해와 포용의 자세로 이웃을 보듬고 자기 존엄을 품위있게 지켜내며 써낸 글들을 모았다.
이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었던 문학을 전공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창작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던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이 책이 담겼다.
"일흔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른이다. 이른(일흔) 전 나의 분투기가 이른(일흔) 후 내 삶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많은 경험이 글이 되었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실버 취준생 분투기' 중) 256쪽, 1만5천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