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기계가 빚은 인재(人災), 이번만일까

사회부 임재환 기자

사회부 임재환 기자
사회부 임재환 기자

이달 초 대구 북구 한 기계식 주차장에 진입하던 차량이 추락해 20대 꽃다운 나이의 여성이 숨졌다. 당시 이 주차장은 오작동 수리 중이었지만 문이 개방돼 있었다. 차량이 탑승하는 팔레트를 옆으로 치워 지하 4층까지 뚫린 상태였다. 고인은 평소에도 이곳 주차장을 자주 이용했고, 열린 문에 무심코 진입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주차장법상 20대 이상 규모의 기계식 주차장에는 관리인이 상주해야 한다. 해당 주차장은 29면 규모로, 사고 현장에 관리인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발생 시점에 관리인은 없었다. 반면 북구청에 확인한 결과 관리인 배치 신고가 돼 있었다. 두 기관의 답변이 서로 달라 건물주 측에 물어봤다.

건물주 대리인은 "건물 내 세입자들이 관리인 교육을 받았고, 그들이 관리인이고 필요하면 나가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업무에 바쁜 세입자들이 주차장을 언제 찾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용을 돕는다는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 '관리인이 기계식 주차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주차장법을 숙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는 "건물 수입(임대료 등)이 1천500만 원 수준으로, 주차만을 위한 관리인을 실제로 두기 어렵다"며 진짜 이유를 밝혔다. 결국 인건비 절감을 위해 얄팍한 수를 쓴 것이다. 세입자들에게 관리인 교육을 받게 해 전산에서나 존재하는 허상의 관리인을 뒀다. 안전을 위해 현장에 상주하는 '실체'는 없었다.

법에 명시된 대로 관리인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이번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고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과 분개가 공존했다.

지역 내 관리인을 필요로 하는 20대 이상 기계식 주차장 비율은 상당하다. 대구시에 따르면 5월 기준 기계식 주차장은 모두 1천326곳이다. 이 가운데 20대 이상은 737곳(55.5%)으로 절반을 웃돈다.

통상 기계식 주차장은 부족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하고, 토지 매입비가 들지 않아 경제적이다. 특히 건물 지하 또는 좁은 면적에도 설치할 수 있어 건축허가를 위한 법정 주차대수 확보에도 유용하다. 하지만 규정을 충족한 후에는 '나 몰라라'식의 대응이 수두룩하다.

기자도 지난 3월 대구 중구의 한 기계식 주차장을 이용했다. 20대 이상 규모였다. 관련 법에 따라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었다. 입차할 때 관리인이 조작을 직접 돕기도 했다.

그때까지였다. 하루 뒤에 나간다는 말에 관리인은 "내일 본인 차량번호 누르고 출차하면 된다"며 조작법을 알려줬다. 다음 날 차량을 빼기 전 사무실을 확인하니 관리인은 휴대폰 삼매경이었다. 당시 주차장법 내 관리자 의무를 몰랐던 탓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고,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어렵게나마 출차했다.

그리고 북구 기계식 주차장에서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달이 지났지만 마음속 아찔함은 아직도 자욱하다. 기계식 주차장의 이해 당사자들이 안전불감증을 갖고 있다면, 누구라도 인재(人災)를 겪을 수 있겠다고 느껴서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기계는 어느 순간 탈이 나기 마련이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식 주차장을 드나들고 있다. 지자체의 현장점검도 중요하겠으나, 조작‧관리에 관여하는 이들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사고는 이번 한 차례에 그치지 않는다. 부디 인재를 막기 위해 녹슨 기계에 사람 손길이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