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가뭄 속의 마늘종

그동안 꽝철이가 드러누웠었나 보다. 예전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꽝철이(강철이强鐵-)인데, 이놈은 지나는 자리마다 물을 말려 가뭄을 불러온다고 했다. 벌렁코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한다나.

모임에서 마늘종 뽑기 봉사하러 나섰다. 의성 시골에 땡땡 햇살이 내리꽂힌다. 지독한 가뭄에 일손까지 모자라 농심은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목마른 마늘 알뿌리는 자잘하고 억센 마늘종은 나뭇가지 같다. 마늘종을 뽑든, 꺾든 해야 알뿌리가 굵어진다니 뚝뚝 분지를밖에.

조선 인조 때 큰 가뭄이 들었다. 농작물은 모두 타들어 가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임금은 베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올렸다. 하늘이 감동했는지 먹구름이 몰려와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은 비를 맞으며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임금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자가 보였다. 한 선비가 황급히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뛰어가는 게 아닌가.

저런 고얀,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를 피하다니. 임금은 당장 선비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선비 말하는 것 좀 보소. 한 방울의 비라도 메마른 땅을 적셔야지 비천한 몸이 어찌 비를 맞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비를 맞으며 춤을 춘 신하와 백성들보다 비를 피한 선비가 더욱 충성스럽지 않은가. 때때로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해지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착해지기도 한다는 게 이런 경우인가 보다.

날씨가 어찌 한결같기를 바랄까마는 푸석푸석한 대지를 바라보니 마음마저 마른다. 기우제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서 해갈을 바랄 뿐이다.

마늘종은 꽃대가 완전히 자란 마늘의 꽃줄기이다. 마늘 속대, 마늘 싹이라고도 한다. 마늘종은 마늘이 가진 효능의 70% 정도를 가지고 있는데, 덤으로 마늘에 없는 비타민E, C, K, 필수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다. 항산화 작용을 하는 베타카로틴은 마늘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특히 마늘종에 함유된 알리신 성분은 인슐린 분비를 도와 혈당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을 준다.

보름 전에 지인 댁에서 뽑아온 연한 마늘종으로 이미 마늘종 장아찌와 밑반찬을 마련해 두었다. 예전에는 고추장에 박아서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먹었는데, 그때만큼 고추장을 담그지 않으니 추억 속의 요리가 되어버렸다. 마늘종은 맵고 따뜻한 성질에 좋은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나 단백질과 칼슘이 부족하다. 마늘종에 건새우와 멸치를 넣어 볶는 이유이다. 돼지고기도 마늘종과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땀 흘려 뽑고 꺾은 마늘종으로 무얼 할까. 가뭄까지 보태 질겨진 마늘종, 뭣이든 연해야 맛있다. 마늘종을 냄비에 깔고 생물 고등어 올려, 된장과 고춧가루 양념 끼얹어 찌개 끓인다. 푹 끓이니 마늘종은 연해지고 고등어도 맛나다. 마늘종 반찬 차려놓고 기우제라도 지낼까.

욕 얻어먹던 꽝철이가 귀 따가워 도망갔나 보다.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빗방울 나린다. 실로 오랜만에 약비 내린다. 대지에 피는 흙꽃, 마른 땅에 빗방울이 튕기자 흙먼지가 풀썩 꽃 모양으로 피었다가 사라진다. 진한 흙 내음이 진동한다. 이것은 복비, 꿀비이다. 먼지잼이 아니라 단비이다. 화마가 집어삼킨 산천초목을 되살리는 생명수이다.

마늘밭 알뿌리 굵어지겠구나, 까맣게 그을린 농부 얼굴에 근심 사라지겠다.

Tip: 위장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마늘종을 생으로 먹으면, 속쓰림 복통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반드시 익혀서 먹도록 한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