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포항 장기읍성에서 기우제가 열렸다. 오전 9시부터 1시간가량이었다. 개업식, 고사, 굿판 등 각종 기원(祈願)의 필수 제물이라는 돼지머리가 제상에 올랐다. 인근 대학 교수가 축문을 쓰고 유림에 자문도 했다. 집단지성의 합력이었다. 기도발이 먹혔는지 5일부터 연이틀 비가 내렸다. 단비였지만 아직 모자라다. 올 들어 내린 비의 양은 지난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기우제는 과학과 거리가 멀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며 반박당하기 좋다. 눈, 비를 내리고 그치게 하는 게 인간 재주의 영역은 아니다. 현충일 연휴 동안 내린 비를 기우제 공(功)으로 돌리는 건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믿음이란 것이 합리성에서 나오던가. 간절한 마음들은 종교를 초월해 나타나기도 한다. 2003년 8월 유럽 전역에서 가뭄과 폭염 피해가 확산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를 호소하는 기도회를 집전하기도 했다.
조선은 예조에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전향사(典享司)를 따로 뒀다. 기우제 등이 국가적 중요 행사였던 것이다. 날씨의 양상을 비는 건 현대에도 엄연한 진행형이다. 비를 그치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 눈을 내리게 해달라는 기설제(祈雪祭)도 마찬가지다. 2011년 장기간 장마가 이어지자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청제를, 2019년 강원 태백시에서 눈 축제에 사용될 눈을 풍성하게 해달라며 기설제를 지냈다.
조선시대까지는 비가 제때 오지 않는 게 임금의 부덕 탓이라 여겼다. '과학왕'이라 불리는 세종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첫해였다. 예조에서 가뭄 대책으로 원통한 옥사 심리, 궁핍한 백성 구제, 해골과 짐승의 뼈 매장 등을 건의하자 그대로 따른 것은 물론 정사의 잘못함이 없는지 의견을 구했다. 민심 이반을 막으려는 대처로 풀이할 수 있다.
태종은 가뭄이 오래 이어지자 금주령을 내렸다. 따져 보면 일리가 있다. 술을 마시면 숙취로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술을 만드는 데도 좋은 물이 필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인 조선에서 백성이 힘겨워하니 리더인 임금부터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정신 줄을 팽팽히 당기지 않으면 민심이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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