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이른바 '용와대'(용산 청와대·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한 윤석열 대통령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미안해하는 표정도 찾기 어려웠다. 지지율이 20%대로 바닥을 기고 있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세던 시기였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까지 더해져 민심이 싸늘할 때였다. 윤 대통령은 '분골쇄신'에 방점을 두고 마이 웨이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장면이다.
윤 대통령은 대단히 특이한 존재다. 정치 이력이 전무한데 문재인 정권과 싸우며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고, 마침내 대통령실에 입성했다. 폭발력을 가늠하기 힘든 '부인 리스크' 역시 이례적이다. 취임사에 '통합'을 전혀 담지 않았고, 지난 기자회견에서는 '지역'을 언급하지 않았다. 취임 100일이 되도록 조각(組閣)을 마무리 못 한 것도 처음이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 라는 문자 메시지는 대통령발(發)로는 초유의 일이다. 당의 수장(首長)이 반기를 든 것 또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백일 상(床)은 낯설었다. 건강·무탈을 기원하며 장만하는 백설기와 수수경단은 풍성한데 전통적 백일 상차림치고는 인절미(인내)와 송편(포용)이 빈약해 균형이 잡히지 않은 듯한 인상이었다. '반성이나 쇄신이 없는 자화자찬'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안 그래도 거야(巨野)의 견제와 공세를 뿌리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윤 대통령이다. 경제와 외교·안보의 이중·삼중고 속에서 국가 최고지도자가 보여준 예상 밖 자신감은 국민 정서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이후 국회의장단과 만나 협치를 강조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의 경호 구역을 확장하는 통합 행보로 궤도를 수정했다지만, 반전의 모멘텀으로 충분할까. 초반 대량 실점을 만회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경기 운용 능력이 절실하다. 최근 인적 쇄신 등에 힘입어 TK(대구경북)와 50대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다소 반등세를 탄 만큼 자세를 가다듬고,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대통령실의 기대대로 추석 이후 40%대 지지율 확보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대통령을 겪었다. 취임사에서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를 외칠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상징되는 '내로남불'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소득주도성장 같은 정책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은 진짜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살아야 했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에 다 걸기 하려는 윤 대통령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않는다면 불행한 과거는 되풀이된다.
인디언들은 초원을 달리다가 말에서 내려 좌표를 확인하곤 했다고 한다. 잠시 질주를 멈추고, 초심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윤 대통령은 명출사표로 평가되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경청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화와 타협을 역설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정권 내부의 언로(言路)다. 중국 최고의 군주 중 한 명인 당 태종은 고구려 안시성 전투에서 굴욕을 맛본 뒤 "위징이 있었다면 원정을 말렸을 텐데…"라고 후회했다. '윤핵관' 대신 위징처럼 간언(諫言)을 하는 측근을 두라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내년 돌잔치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통령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