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착각이다. 국민은 극단적 대중 선동가의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그들의 연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중 선동가들이 입에 올리는 '국민'과 '서민' '민중'은 그저 입에 발린 달콤해 보이는 구호일 뿐이다. '가난한 자들'의 편이라는 그들의 언어는 달콤하다.
"이게 나라냐"라며 국정 농단을 비난하면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 5년은 검찰과 경찰 및 법원 등의 국가 사법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참혹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서로 편을 갈라 찢어졌고 선거는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굿판으로 변질했다.
0.73%포인트라는 간발의 격차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가운데 다수의 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최근 들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일부 극렬 지지자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선동에 나섰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사법 시스템 농단을 자행한 세력들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 시스템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민주주의는 나약한 제도다. 선동으로 휘두를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다.
주말 내내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를 정주행했다. 도입 부분에 '이 드라마는 실화에 기초했지만 일부 등장인물 이름과 기업체 사건과 지역은 모두 허구입니다. 실제 이름과 인물 및 역사와의 유사성은 우연이며 의도하지 않은 바입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종종 이런 자막을 접하면서도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상상에 의한 허구라고 믿지 않는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를 기반으로 코카인 밀매 유통망인 '메데인 카르텔'을 주도한 전설적인 남미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에스코바르는 자신이 태어난 메데인의 빈민가에서 마약 판매로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고 푼돈을 나눠 주면서 '빈민의 로빈후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국회에 진출했다. 그의 꿈은 콜롬비아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협조하면 돈을 주고, 아니면 죽음을 선사했다. 법무장관과 정치인, 판검사, 경찰과 공무원, 기자 등 무려 5천여 명이 살해됐다.
에스코바르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된 후 찍힌 '머그샷'이 드러나는 바람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통령 꿈까지 포기해야 했다. 그 후 그는 공산 게릴라를 사주해서 대법원을 공격했고 인질로 잡힌 수십 명의 판사들을 살해했다. 대선 후보 3명도 암살했다. 다른 대선 후보에 대한 항공기 테러로 110여 명의 무고한 승객이 희생됐다.
한국영화 '아수라'(2017년)는 택지 개발을 통해 치부를 하고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지방자치단체장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강력계 형사다. 지난해 대장동 의혹이 터지자 '아수라'는 역주행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가 특정 정치인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왔다.
현실을 소재로 하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연일 쏟아지는 세상에서 영화 같은 현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영화를 우리는 매일 접한다. '나르코스'의 대통령 꿈은 1980년대 콜롬비아가 용납하지 않았고, '아수라'의 안남시장도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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