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하청 공사비 체불, 해결할 제도 없나요"…영세 업체 피눈물

전자조달, 민간 의무 대상 아냐
기업-사람 체불 문제만 다루는 노동청 "민사 소송 안내할 수밖에"

대구 서구 내당동의 한 아파트. 해당 아파트 준공청소를 진행한 하청업체가 공사금액을 지급해달라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심헌재 기자.
대구 서구 내당동의 한 아파트. 해당 아파트 준공청소를 진행한 하청업체가 공사금액을 지급해달라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심헌재 기자.

대구 건설 현장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사업체 간 임금 체불 사건'을 두고 제도적인 보완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업체와 노동자 간의 임금 체불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담당하지만 사업체 간 체불은 민사 소송 외에는 해결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최근 찾은 대구 서구 내당동 한 아파트 단지 정문 앞. 주차된 차량 확성기에서 "추가 공사 금액을 제발 지불해달라"는 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아파트의 준공 청소를 한 하청업체가 공사 금액을 받지 못했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지난 4월 이 아파트 시공사는 A업체에게 준공 청소 등 추가 공사를 주문했다. A업체는 B업체에게 재하청을 줬고, B업체는 추가 공사 금액으로 6천75만원을 요구했다. 이를 승인한 시공사는 해당 금액을 A업체에게 지급했지만, B업체가 A업체에게서 받은 돈은 1천600만원이 전부였다.

B업체 관계자는 "추가 공사비를 받은 A업체가 이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면서 "일한 사람 다르고, 돈 받은 사람이 또 다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업체 관계자는 "재하청 업체와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상황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시공사도 A업체에게 공사비를 다 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추가 공사비는 계약을 맺은 A업체에게 다 지불했고, 이후 상황은 업체들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시공사도 개입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문제와 관련,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전자조달시스템 등을 통한 공사대금 지급 방안을 마련했다. 발주자와 원청, 하청 등이 각각 대금지급시스템을 통해 대금을 청구하고 계좌로 지급받는 방식이어서 공사 대금 유용 및 체불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발주하는 건설 현장에만 적용된다. 민간 기업이 발주하는 공사는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몇몇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전자적 대금지급시스템을 사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현실적으로 기업 간 체불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노동자가 아닌 기업 간 대금 미지급 문제는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구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사업체 간 체불 신고가 들어오긴 하지만 소관 업무가 아니어서 민사 소송을 안내한다"고 했다.

대구시나 경찰 역시 마찬가지다. 대구시 관계자는 "만약 민원이 들어온다면 현장 조사를 해보겠지만 모든 공사 현장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김세중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경본부 사무국장은 "사업체 간 체불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데, 영세 하청업체는 집회나 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다"면서 "이는 결국 하청업체에 속한 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