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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원 체력검정 시험이 어떻길래…60대 지원자 사망

15㎏ 등짐 펌프를 메고 공원 500m 구간 2바퀴 돈 뒤 쓰러져
산불감시원 사망사고 빈번…안전대책은 미비
뒤늦은 수성구청장 사과 논란…나이제한 목소리도

수성구청 전경. 매일신문DB
수성구청 전경. 매일신문DB

대구 수성구청이 진행한 산불감시원 채용 과정에서 60대 지원자가 사망하면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구급차나 응급구조사를 배치하지 않은 구청의 미흡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6일 수성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오후 1시 42분쯤 수성구 고모동 수성패밀리파크 관리사무실 앞에서 기간제 산불감시원 채용 체력시험을 치르고 휴식 중이던 A(66) 씨가 쓰러졌다.

당시 A씨는 무게 15㎏ 등짐 펌프를 메고 공원 500m 구간 2바퀴를 13분 만에 돈 뒤 4~5분간 휴식을 취하던 상태였다. 산불감시원 채용 시험은 500m 구간 2바퀴를 20분 안에 돌면 통과되는 방식이다. 현장 응시자들이 A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구강 내 토사물을 제거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산림청의 산불감시원 운영 규정에 따르면 체력검정평가를 준비하는 기관은 응시자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구급차,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사 및 응급의료 장비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와 응급구조사, 간호사 등은 사전에 마련되지 않았다. 수성구청 측은 구급차와 응급구조사 배치가 어려워 체력시험 방식을 완화했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15㎏짜리 등짐 펌프를 메고 산지 1.7㎞ 구간을 이동하는 식으로 체력시험을 치러왔지만,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올해는 평지 1㎞를 걷는 방식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구급차와 응급구조사는 없었지만 사고가 난 인근 사무실에 제세동기 등 응급의료 장비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구청의 사후 대처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A씨의 딸 B씨는 "구청장은 사고 직후 사과도 없었고 빈소에 오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가는 데도 구청 직원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지 않았고 유족 측에 상황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며 "뒤늦게 구청장과 면담하고 500만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 이력서에 집주소와 연락처가 적혀있을텐데 구청 직원이 어떻게해서든 연락을 취했어야 한다. 구청 측이 연락처 확보를 못했다고 유족 측에 설명하는데 어이가 없다"며 "제세동기 장비를 배치했다고 해도 직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의지조차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구청 측은 "사고 발생 후 유족 연락처 확보가 어려웠고 긴급 생계비 지원 등을 고려해 말씀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산불감시원 업무 특성을 고려해 나이 등 응시자의 자격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에는 충북 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서, 지난 2020년에는 울산시·창원시·경북 군위군에서 각각 사망자 1명씩이 발생했다. 올해 수성구 산불감시원 응시자 45명도 대부분 60~70대 고령자였다.

수성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산을 오르내리는 산불 감시원 채용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젊은 분들은 잘 지원하지 않는다. 내년에는 예산을 반영해 구급차와 응급구조사를 배치를 하고 시험 방식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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