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영웅’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웅'(감독 윤제균)은 동명의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영웅적 서사가 뮤지컬의 요소들과 어우러져 드라마틱하게 스크린에 펼쳐진다. 뮤지컬에 비해 시야는 넓어졌고, 음악 또한 웅장하다. 캐릭터 또한 더 다양해져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보여주려는 연출의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09년 3월 러시아 연추 지역, 안중근이 넓게 펼쳐진 설원 위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작나무 숲에서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쓴다. 태극기에 새긴 네 글자 '대한독립'. 하얀 눈 위에 떨어지는 선혈, 결의에 찬 눈빛, 가슴을 데우는 뜨거운 비장함이 묻어나는 오프닝이다.

안중근은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어머니를 뒤로 하고 조국 독립에 몸을 던진다. 1908년 함경북도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진공작전을 펼치던 그는 일본군 포로를 총살하려는 동료를 막아선다. 만국공법을 들어 일본군들을 살려 보낸다.

그러나 목숨을 건진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독립군 근거지로 쳐들어오고, 안중근은 대동아공영을 외치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것만이 조선독립을 앞당기는 일이라 생각해 그를 노린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무대 예술이 가진 가상의 공간감을 리얼리티를 담보한 극으로 전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몰아치는 밀물과 썰물로도 끌어갈 수 있다. 영화만큼 연기의 잔물결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영화는 촬영이라는 필터를 통해 등장인물을 클로즈업하기 때문에 세심한 연기선이 필요하다. 영화 '레미제라블'(감독 톰 후퍼)이 배우들의 노래를 동시 녹음한 것도 배우들이 극적 긴장감과 현장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웅'의 정성화는 안중근과 싱크로율이 최고이다. 눈빛이며, 특히 콧수염, 머리카락의 경계 등 외모와 분장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그러나 연기는 무대의 톤이 남아 있다. 그가 2009년 뮤지컬 초연때부터 안중근 역을 맡았으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설희 역을 연기한 김고은이다. 설희는 눈앞에 조선의 왕비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것을 보고,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의 측근 게이샤가 된다. 그녀의 정보로 독립군은 이토 히로부미를 노리게 되지만, 설희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는다. 특히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딸이기를'이란 노래를 부르며 기차에서 투신하는 장면은 관객을 울컥하게 만든다. 김고은의 세심한 연기 덕분이다.

'영웅'은 뮤지컬의 장점을 영화의 장점과 합류시키려는 의욕이 강하다. 조연들이 펼치는 유머코드도 그 중에 하나다. 안중근을 도와주는 독립군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마진주(박진주) 등이 영화의 비장미를 녹여주는 감초역할을 한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유머가 너무 잦다 보니 극의 흐름까지 방해하는 듯 해 아쉬움을 준다.

그럼에도 모든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혼신을 다한다. 특히 안중근의 어머니로 출연한 나문희 배우가 훌쩍이며 아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는 가슴을 흔든다.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천주의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노랫말은 모성과 조국애, 신앙까지 아우르는 큰 울림을 준다.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영웅'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로 전환되는 뮤지컬적인 요소가 낯설 수도 있다. 어색한 CG 등도 아쉽지만 그럼에도 '영웅'은 힘이 느껴지는 뮤지컬 영화다. 뮤지컬 배우 정성화의 가창력이 큰 역할을 해 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웅혼한 느낌은 정성화의 열창의 힘이 크다.

그와 함께 녹아 있는 안중근이란 인물의 서사가 워낙 극적이고, 영웅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당당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다. 대동아공영의 허위를 만천하에 알리고 최후를 맞는다.

영화의 마지막 사형장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가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가난하고 힘없는 조국에 태어났지만, 조국을 위해 온 몸을 던진 한 청년의 '대의의 길', '하늘이시어 도와주소서'라며 애원하는 그의 모습에 목이 메인다. 그의 나이 31살이다. 영화는 아직 그의 주검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끝을 맺는다.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영웅'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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