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애프터썬’

성인이 된 딸의, 아빠에 대한 회상
샬롯 웰스 감독의 자전적 작품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미안해 소피. 그러면 안됐었어. 정말 미안해 소피."

아빠는 딸 소피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한없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아빠의 마음도 담겨 있다.

1일 개봉한 '애프터썬'(감독 샬롯 웰스)은 아름다운 영화다. 오래된 앨범에서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애잔함과 미련, 그리고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을 건져 올리게 한다.

성인이 된 소피(실리아 라울슨홀)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찍은 영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화는 둘이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의 아빠와 딸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영국 에든버러에 살고 있는 11세 소녀 소피(프랭키 코리오)는 여름 방학을 맞아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튀르키예로 휴가를 떠난다.

낯선 곳은 둘을 더욱 가깝게 만든다. 함께 누워 선탠을 하고,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이 참 좋아. 무슨 말이야? 그냥 가끔 하늘을 봐."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일상의 사소한 주제들이다.

'애프터썬'은 피부 크림이다. 햇볕에 탄 피부에 발라 화기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준다. 딸은 아버지의 등에 크림을 발라 준다. 마치 상처를 잊게 하는 묘약처럼 말이다. 함께 머드팩도 바른다. "클레오파트라가 이곳까지 와서 진흙을 발랐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일상의 대화는 계속된다.

아빠의 나이는 31살이다. 같이 다니면 오빠로 오해하기도 한다. '완벽한 아빠'가 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한 막막하고 불안한 상황이다. 그러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애쓴다.

'애프터썬'은 둘의 일상을 담담하게 클로즈업한다. 난간에 포개진 두 개의 손이나, 해변에 앉아 있는 둘의 뒷모습, 터질 듯 쨍한 햇살, 일렁이는 바다와 푸른 물 속, 고대 유적지의 고즈넉한 풍경. 휴가지에서 볼 수 있는 따스하고, 정겨운 모습들을 담고 있다.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감독이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보냈던 튀르키예에서의 휴가를 떠올리며 만든 자전적인 작품이다. 어린 기억은 단편적이다. 기억 또한 흐릿하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한 것은 아빠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다. 사랑하는 법은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온전한 것이다. 아빠의 마음 또한 그런 것이다. '우리 딸 소피, 널 사랑해, 이건 잊지 마'

무의미한 듯 휴가지 풍경의 연속이지만, 물 밑에서 감정들이 살아난다. 굳이 관객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으면서 함께 상상하고 동의하도록 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는 모든 자식들이기에 관객들은 그들을 이해한다.

소피가 30살이라는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다. 11살 소피의 따뜻한 기억과 달리 아빠의 등이 보일 나이다. 쓸쓸하고 외롭고 두려운 아빠의 처지가 이해될 나이다. 그래서 그 때 아빠가 보여준 사랑의 크기와 무게가 지금의 소피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정서를 터치한다.

베란다에 서서 이상한 동작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빠의 행동, 그러나 딸은 휴가지에서 아빠와 함께 태극권의 동작을 함께 따라한다.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는 것까지 바꾸지.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춤이야. 우리 자신의 모습이지."

캠코더 영상 속에서 아빠에게 장난치는 소피, 그리고 딸을 찾아 일렁이는 캠코더의 시선에서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함께 즐거웠던 그 어떤 한 때, 그 아름답고 소중했던 시간, 한 없이 그립고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여운이 길게 남는다. 절제된 연출이 돋보이고, 두 배우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2010년생인 프랭키 코리오는 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고 한다.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샬롯 웰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는 뉴욕대 대학원에 재학 중 단편영화를 찍었고, '문라이트'의 감독 배리 젠킨스의 권유로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영화사 A24의 작품이다.

A24는 설립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올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린 영화사다. 2017년에는 '문라이트'가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을 받기도 했고,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은 '미나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가 가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A24의 영화답게 '애프터썬'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타임지 등 해외 매체에서 꼽은 '2022년 올해의 영화'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제에서 131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5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01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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