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천년 대학의 도시…영국 옥스퍼드

1096년 설립, 영어권에선 최고 대학…英 총리 28명·노벨상 55명 배출 명문
대작가 톨킨·루이스, 문학 교수 임용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해리포터 촬영…호그와트 현관·촛불 천장에 떠있던 곳
보들레이언 도서관 셰익스피어 초판본

천년 대학의 역사를 가진 옥스퍼드 대학교.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다음으로, 영어권에선 가장 오래되었다.
천년 대학의 역사를 가진 옥스퍼드 대학교.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다음으로, 영어권에선 가장 오래되었다.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래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 한다.// 타버린 재에서 새로운 불길이 일고,/ 어두운 그림자에서 빛이 솟구칠 것이다./ 부러진 칼날은 온전해질 것이며,/ 왕관을 잃은 자 다시 왕이 되리. -J.R.R. 톨킨, '반지의 제왕' 중에서

런던에서 북북서로 80km쯤 템스 강 상류에 옥스퍼드(Oxford)가 있다. 정확하게 옥스퍼드 대학교가 있다. 빠듯한 일정에서 다른 관광지를 제외하고 이곳을 굳이 택한 이유는 위의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롤 바로 그들이 거닐던 곳을 보고 싶어서였다. 아,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오스카 와일드도 빼놓을 순 없겠다.

◆학문의 도시 옥스퍼드

옥스퍼드 대학교는 1096년 설립되었다. 세 개의 왕관 사이 펼쳐진 책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 도미누스 일루미나티오 메아(Dominus Illuminatio Mea, The Lord is my Light, 신은 나의 빛)가 천년 대학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다음으로, 영어권에선 가장 오래되었다. 신학, 법학, 의학, 교양학부로 개설되어 헨리 2세가 1167년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교에 가지 못하게 막자 빠르게 발전했다.

1249년 유니버시티 칼리지가 최초로 세워졌으며, 1263년경 베일리얼 칼리지가, 1264년에 머턴 칼리지가 세워졌다. 17세기 후반에는 과학 연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어 1878년 옥스퍼드 최초의 여자대학인 레이디마거릿홀이 세워졌으며, 1920년부터 여자의 입학이 허용되었다. 20세기에는 과학이 보다 중시되었으며, 근대 언어, 정치학, 경제학을 비롯한 많은 학과들이 새로 생겼다. 현재 서른 개가량의 칼리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단과대학이란 뜻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들이 다 같이 먹고 자고 공부하는 기숙사에 가깝다.

hertford brige college .보들레이언 입구 맞은편에 있는 탄식의 college를 연결하는 다리. 옛날 오른편에서 암울한 성적표를 받아 왼쪽에서 마중나온 식구들을 만나러 갈때 학생들이 탄식했던 다리.
hertford brige college .보들레이언 입구 맞은편에 있는 탄식의 college를 연결하는 다리. 옛날 오른편에서 암울한 성적표를 받아 왼쪽에서 마중나온 식구들을 만나러 갈때 학생들이 탄식했던 다리.

이 중세풍 대학도시의 모든 길은 그래서 좁고 꼬불꼬불하다. 대중교통 외 승용차는 도시 외곽에 차를 세우고 걷거나 버스 또는 택시를 타야 한다. 한참을 걸어 1525년 설립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교정으로 들어선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자 헨리 8세에게 목이 잘리고 만 비운의 왕비 앤 불린과 극도로 사이가 나빴던 추기경 울지가 설립한 칼리지다. 입구 바닥에 아름다운 칼 한 자루가 새겨져 있다.

이곳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는 영화 해리 포터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뾰족모자를 쓴 맥고나걸 교수가 신입생들을 맞는 호그와트 현관과 촛불이 천장에 가득 떠있던 만찬장이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루이스 캐롤의 초상화와 왼편 다섯 번째 스테인드 글래스에 앞치마를 입은 앨리스와 도도새, 여왕, 토끼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다는데 시간에 쫓겨 가보질 못 했다. 다음엔 꼭 혼자 와서 한 보름 묵으며 천천히 이 대학 도시를 샅샅이 둘러보리라 생각했다.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도서가 한 권씩 소장된 보들레이언 도서관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도서가 한 권씩 소장된 보들레이언 도서관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도서가 한 권씩 소장된 보들레이언 도서관

1320년 건립된 보들리언 도서관은 헨리 5세의 동생인 글루세스터 공작에 의해 1426년 확장된 뒤, 종교개혁 때 흩어진 서적들을 정리하기 위해 토머스 보들레이언이 1602년 새롭게 세웠다. 저작권 도서관으로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도서가 한 권씩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시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도서관이 바로 이곳이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펴낸 성경, 1492년 콜롬버스의 항해지도 원본, 1623년 펴낸 셰익스피어 전집 초판본 등이 소장되어 있다니 보물창고와 다름없는 곳이다.

도로가에 면해 둥글게 생겨 눈길을 끄는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보들레이언 도서관의 열람실로 팔라디오 양식 건물이다. 영국 최초의 돔형 도서관으로 옥스퍼드에서도 단연 눈에 뛴다. 이름 때문에 오해하는 이들이 많으나, '카메라'의 뜻은 라틴어로 '방'을 뜻하니 열람실이라 칭해도 무리가 없을듯하다. 옥스퍼드의 많은 칼리지처럼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건물 외부만 볼 수 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내과의 존 래드클리프 박사의 지원기금으로 지어졌다.

둥글게 생겨 눈길을 끄는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보들레이언 도서관의 열람실로 팔라디오 양식 건물이다.
둥글게 생겨 눈길을 끄는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보들레이언 도서관의 열람실로 팔라디오 양식 건물이다.

로마식 건물처럼 생긴 셀도니안 극장도 건물 외벽만 볼 수 있다. 옥스퍼드 학생들의 학위 수여식이나 회의장 또는 콘서트장으로 쓰이기도 한다는데 옥스퍼드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며 가이드의 손짓에 따라 외벽과 지붕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다.

아마 28명의 영국 총리들, 클린턴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들, 55명의 노벨상, 3명의 필즈상, 2명의 아벨상 수상자들이 이곳에서 졸업식을 가졌으며 또한 120명의 올림픽메달리스트들이 배출된 곳이라는 설명을 듣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의 역사도 꽃 피는 날만 있을 것인가. 1209년 이곳 옥스퍼드의 학생들과 주민들 사이 분쟁이 일어나 일부 학자들이 동북부 케임브리지로 가 대학교를 세워 버린다. 그 케임브리지 대학교 또한 이과가 성한 세계 최상의 명문으로 문과가 성한 옥스퍼드와 함께 옥스브리지로 줄여 부르며 영국 최고라는 타이틀을 두고 800년 넘게 모든 면에서 서로 라이벌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려대와 연세대 사이 연고전(고연전?)도 그 맥락이랄까.

옥스퍼드 시가지
옥스퍼드 시가지

◆톨킨과 루이스

그 외에도 옥스퍼드는 영국 왕실과 종교, 정치에 연관된 격동을 겪는다. 앤 불린과의 결혼을 위해 로마 가톨릭교회와 단절한 헨리 8세의 종교개혁과 수도원 해산, 찰스 1세와 2세 때 걸쳐 일어난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이 그것이다. 하지만 역시 반지의 제왕 서문에 나오는 시에서처럼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하는 법', 옥스퍼드는 굳건히 현재까지 세계 최고의 위상을 스스로 지켜오고 있다.

비가 내린다. 톨킨과 루이스는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문학을 가르쳤다. 그때도 이 천년 도시엔 이처럼 자주 비가 내렸을 것이다. 절친한 그들은 펍 '이글 & 차일드'의 단골이었다. 독수리를 새겨 넣은 둥근 간판이 걸렸지만 그들은 이곳을 '새와 아이'로 불렀다. 여기서 톨킨은 반지의 제왕 초고를 열심히 읽어 주었을 것이고,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읽었을 것이다. 교수, 작가들과 철학과 문학 모임 잉클링스를 만들어 매주 이곳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간 그곳에서 피시 앤 칩스를 시키고 차가운 에일맥주 한 잔을 좁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 귀퉁이방에 앉아 마신다. 시원하고 짜릿하다. 혹시 이 방이 톨킨과 루이스가 토끼굴이라 이름 붙인 곳일까. 바싹하게 밀가루를 입혀 튀겨낸 흰살 생선과 감자 그리고 푸른 콩 샐러드가 담긴 커다란 접시들이 각자의 앞에 놓인다. 누구보다 먼저 잔을 비운 나는 에일 한 파인트를 더 시킬까, 화이트 와인 아니면 세리주를 한 잔 더 시킬까 고민한다.

그러다가 문득 일본의 오사카였던가, 교토였던가, 앨리스 숍을 발견해 들어가 그곳에서 거꾸로 가는 시계와 모자 토끼, 앨리스 사탕을 샀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키에 맞춰 지은 건물이라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들어가니 책의 삽화와 똑같은 곳이 불쑥 문을 열면 나타나 놀라기도 한 곳이었다. 런던에 오래 살아 영국 신사 같은 가이드 선생께 물어보니 옥스퍼드에도 그 가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본인이 역시 주인이라나.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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