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졸업’

1967년작 재개봉…청춘의 불안·방황 그려
무명이던 더스틴 호프만, 할리우드 스타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극장에서 고전영화를 만나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마치 도서관에 들른 듯 경건한 마음이 든다. 시대는 변해도 영화는 남는다. 노년이 된 배우의 앳된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니 시간여행이 따로 없다.

1967년 작으로 청춘에 관한 마스터피스 '졸업'(감독 마이크 니콜스)이 2월 졸업 시즌을 맞아 재개봉했다. 고만 고만한 신작 영화들 속에서 옛 향기를 더듬는 의미에서 '졸업'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본다.

'졸업'은 20대 젊은이의 불안과 방황을 그린 청춘의 자화상 같은 영화이다. 주인공 벤(더스틴 호프만)은 미국 사회로 보면 금수저다. 부유한 부모의 가르침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명문대를 졸업한다. 집안 배경으로 보면 그의 앞날은 밝은 셈이다. 그러나 갓 사회에 나온 초년생의 두려움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벤을 연기한 배우가 더스틴 호프만(85세)이다. 출연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깝고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20대의 불안과 초조, 방황과 잘못된 선택 등 어리석은 일면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었고, 이 영화를 통해 그는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졸업'은 1963년 발표된 찰스 웹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소설 속의 벤은 어떤 캐릭터로 묘사됐을까. 183cm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다. 웅변 서클의 회장을 맡고 육상선수로 만능인 서프보드 타입이다. 이런 타입의 배우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일 것이다.

'졸업'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 소설 속 묘사처럼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을 것으로 모두 예상했다. 그러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소설 속 인물을 버리고 167cm에 순진한 외모의 더스틴 호프만을 선택했다. 앞날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약한 캐릭터를 로버트 레드포드에게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은 예리했고 정확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졸업'은 흥행과 평론 모두에서 성공했고, 마이클 니콜스 감독은 이 영화로 제4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1967년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300만달러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5천만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거뒀다. 5천만달러는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1억7천500만달러에 이르는 가치다.

그럼에도 찰스 웹의 동명소설에 지불한 저작권료가 1천달러 밖에 되지 않은 것도 놀랄 일이다. 당시 책 가격이 20달러였다고 하니 책 50권 살 돈으로 저작권을 산 것이다. 소위 말해 거저 주운 것이다. 찰스 웹 또한 이처럼 흥행에 성공할지 몰랐을 것이다.

'졸업'이 성공한 것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불안을 영화에 잘 투사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은 격동의 시대였다. JFK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히피 문화, 냉전, 흑백 인종갈등에 월남전에 대한 반전시위 등 그 어느 시대보다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던 사회였다.

이런 불안과 공포가 벤을 통해 변주되고,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름다운 노래, 사랑을 위해 달리는 마지막 질주 등 험한 세상 다리가 된 영화를 통해 위안을 받은 것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큰 시련(?)을 겪은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벤은 어릴 적 친구인 일레인(캐서린 로스)을 좋아하지만, 일레인의 어머니인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과 불륜을 가진다. 당시 한국의 경직된 분위기로는 천륜을 어긴 파렴치인 셈이다. 그래서 1971년 개봉 때 검열에 걸리자 모녀지간을 이모와 조카 사이로 수정된 자막을 삽입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노골적인 폭력이나 노출이 없었음에도 성인영화로 분류된 희대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28만 명이나 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벤이 결혼식장에 난입해 신부인 일레인을 탈취하는 장면은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버스에 올라탄 둘에게서 희망이 아니라 불안의 기운이 감도는 엔딩 장면은 이 영화가 불후의 명작이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이번 극장판은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년 전에도 2월에 재개봉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이 영화를 본다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정적이면서 파격적인 소재지만 타격감이 없고, 전개 또한 허술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50년이 넘게 꾸준히 회자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1960년대 영화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영상미, 거기에 스토리에 입혀진 음악 때문이다.

'불안의 꿈 속에서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혼자 걸었지/ 가로등불 밑에 다다랐을 때/ 차갑고 음습한 기운 때문에/ 옷깃을 세웠다네'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는 사회의 첫발, 싱그러움 속에 드리운 불안을 경쾌한 멜로디로 잘 그려내 주고 있다. 106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