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년 학교]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 배출…청송 화목초교

지역민 배움에 대한 갈증 해소…1921년 4년제 2개 학급 출발
1960년대까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많은 자료가 소실
학교 교육에 내실을 다져 오면서 올바른 인재 ‘화목인’ 길러 내

1978년 청송 화목초등학교 도서관 개방 모습. 화목초 제공
1978년 청송 화목초등학교 도서관 개방 모습. 화목초 제공
1979년 청송 화목초등학교 어린이날 행사 모습. 화목초 제공
1979년 청송 화목초등학교 어린이날 행사 모습. 화목초 제공

경북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가장 강렬했고 열정적으로 만세운동을 펼친 역사적인 장소이다. 당시 논밭을 매던 농민과 자녀를 키우던 아낙, 책보를 매고 등교하던 학생 등 모든 이들이 이 장터에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청송 화목초등학교(이하 화목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함께 한 학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지역민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줬던 화목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목초는 1921년 2월 15일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4월 1일 현서면 구산리에 4년제 2개 학급의 '화목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이후 '화목공립심상학교'로 교명이 변경되고 1941년 일제하에서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의 하나로 '화목국민학교'로 바꿨다가 정부의 일제 잔재 청산 계획에 따라 1996년 3월 '화목초등학교'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개교 102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학교가 훌륭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으로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화목초의 교육이념과 목표가 훌륭한 교육적 길잡이가 된 덕분이다.

역사의 화살이 학교를 그대로 관통하면서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험난한 시기를 거치면서 1960년대까지 수많은 자료가 소실되는 아픔을 간직한 곳이 바로 화목초다.

1970~1980년대 이 학교의 교육목표는 스스로 효도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스스로 생각하며 부지런히 공부하는 어린이, 물건을 아껴 쓰며 저축하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1985년 1개 학급의 특수 학급이 편성되고 1990년 수락분교와 무계분교를 편입시키고 1993년 병설유치원 1개 학급을 개설하는 등 모두가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교육의 터전을 제공해 왔다.

1990년대 들어 서로 돕는 어린이, 배려하는 어린이 등의 인성 교육적인 측면이 추가로 강조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어린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소질과 개성을 추구하고 스스로 개척하는 어린이라는 교육목표를 추구했다.

2007년 과학실, 2010년 보건실, 2011년 화장실, 2019년 메이커스페이스(컴퓨터실), 2020년 창의융합형 과학실을 구축했다.

2020년 이후 '삶의 힘을 가꾸고 키워가는 건강한 화목 교육'을 목표로 서로 돕고 남을 배려하는 바른 인성 기르기,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기본 능력 기르기, 체력과 감성을 바탕으로 꿈과 끼를 키우기 등을 지원하는 교육에 힘쓰고 있다.

2021년에는 교실 공간 재구조화 사업 등 교육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온 이 학교의 역사와 함께해 온 자랑스러운 화목인도 많이 배출했다.

대표적으로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이 있다.

이 선생은 현서면에서 태어나 1933년 화목공립심상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 학교의 교사로 근무했다.

이 선생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과 아동문학, 우리말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문학 활동에도 큰 발자취 남겨 한국문학상, 단재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0년 청송 화목초등학교에서 열린 마을 경로잔치의 모습. 화목초 제공
1980년 청송 화목초등학교에서 열린 마을 경로잔치의 모습. 화목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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