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일타 킬러’ 워킹맘의 처절한 생존기…영화 ‘길복순’

속도감·타격감 넘치는 액션 눈길
딸과의 갈등에 지나친 비중, 몰입도 저해하기도
전도연·설경구 등 연기, 캐릭터와 찰떡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워킹맘은 오늘도 회사 일로 바쁘다.

아래에서는 후배들이 올라오고, 사장의 낙하산인 상사와 갈등도 있다. 무엇보다 큰 것은 중2병을 앓고 있는 딸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이다. 일만 끝나면 마트로 달려가 장을 봐 딸의 밥상을 차린다.

워낙 일처리가 깔끔해서 업계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도 자신이 하는 일을 딸이 알까봐 걱정이다. 이 워킹맘이 근무하는 회사가 살인청부기업이고,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 킬러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감독 변성현)은 청소년 관람불가의 화끈한 액션과 킬러 워킹맘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무장한 한국형 액션영화다. 액션은 스타일리시하며 속도감이 넘치고, 킬러업계를 평범한 직장 풍속도로 그려내면서 빚어지는 유머도 알싸한 맛을 선사한다.

'길복순' 제목에 핏자국이 뿌려져 '킬복순'처럼 보인다. 영어 제목에는 '길'을 'Kill'로 쓴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길복순'은 누가 봐도 '한국형'이다. 죽기 살기로 고군분투하는 한국 엄마의 극성(?)과 싱글맘의 위험천만한 직장 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누가 봐도 한국은행 같은 고풍스런 본사를 둔 회사는 MK 엔터테인먼트다. 연습생들의 피나는 훈련이 이어진다. 누가 먼저 데뷔할 것인가. 이 곳에서 길복순(전도연)은 모두가 꿈꾸는 성공한 선배다. 일본 명인이 만든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 깡패에게도 마트에서 산 3만 원짜리 도끼로 승부를 건다.

회사를 세운 차민규(설경구)는 업계 최고의 실력자이다. 그는 킬러 업계에 세 가지 규칙을 정했다. 미성년자는 죽이지 말 것과 회사가 허락한 작품만 할 것, 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진행시킬 것이다. 그러나 생계 때문에 무허가 킬러가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민규의 여동생인 차민희(이솜) 이사는 이를 빌미로 길복순을 제거하려 하면서 사내 갈등이 커져간다.

'길복순'은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처럼 킬러업계의 직장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 '회사원'이 살인청부회사 영업 2부 과장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면, '길복순'은 킬러를 양성하고 데뷔시키는 회사의 '일타 킬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강도 높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킬러 업계로 투영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이러한 직장의 일상에서 빚어진다. "선배님, 사랑해요!" 등의 천연덕스러운 대사들이 킬러의 본업과 부딪치면서 웃음을 짓게 한다. 회사 욕을 하면서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이들이 생존을 위해 가방에서 칼을 꺼내는 장면에서는 비애감도 느끼게 한다.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무엇보다 모성애 강한 엄마를 주인공으로 하기에 풍자가 힘을 받는다. "사람 죽이는 일은 단순해, 애 키우는 것에 비하면.", "죽어가는 사람 눈동자에 내가 비칠 때가 있거든, 그런 날은 집에 가서 애와 눈 맞추기도 겁이나."

액션도 속도감이 넘치고, 타격감이 세다. 촬영과 편집의 힘이다. '존 윅'의 액션 달인들이 펼치는 정교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련되고 신선한 맛은 준다. 특히 몇 수 앞을 보는 수 싸움은 액션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청불 영화'답게 잔혹한 장면도 여럿 있다.

그러나 서사의 비중을 정리하지 못해 스토리가 늘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길복순'의 메인 플롯은 워킹맘 킬러의 처절한 생존기다. 워킹맘으로서 딸과의 갈등은 이를 위한 부차적인 서브플롯이다. 그런데 두 가지가 지나치게 병행되다 보니 스토리가 절뚝거리게 된다. 딸의 문제 해결과 스스로의 성장을 엄마의 상황과 오버랩시키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바람에 몰입도와 긴장감을 저해시키는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차민규 역을 맡은 설경구 배우도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이고, 길복순을 넘지 못한 3류 킬러 희성 역의 구교환 배우, 딸 역을 맡은 김시아 배우 등도 호연을 한다.

그럼에도 '길복순'은 배우 전도연의, 전도연을 위한 영화다. 특유의 낭창함과 상대를 압도하는 시니컬한 전도연의 이미지는 길복순 그 자체이다. 눈빛 하나, 손 끝 하나 허술함이 없다. 꽃에 물을 주며 "내 새끼들"하는 간드러짐이 칼을 들면 번득이고, 도끼를 들면 쪼개질 듯 강렬하다.

극장 개봉을 해도 승산이 있을 법한데 OTT로 직행한 것이 아쉽다. 그 바람에 전 세계인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말이다. 137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영화 '길복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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