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네아저씨의 세계여행기] 아르헨티나 ‘라 보카’와 ‘레꼴레따’

낮엔 축구, 밤엔 탱고…뜨거운 열정과 깊은 회한의 두 얼굴

노란색과 청색으로 칠해 놓응 보까팀 구장. 스웨덴 국기에서 따온 색이라고 한다
노란색과 청색으로 칠해 놓응 보까팀 구장. 스웨덴 국기에서 따온 색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이곳에서는 '땅고'라고 발음한다)와 마라도나의 축구로 대표되는 나라이자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라는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이다.

◆마라도나가 뛰었던 보카 주니어구장

오월광장에서 '데펜사'거리로 나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가게들, 벼룩시장, 흥겹게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등 소소한 볼거리들을 보며 한참을 걷다 보면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채색한 축구장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1940년에 개장하여 지금에 이르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보카 주니어(Boca Juniors)구장이다.

이 구장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구장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었던 곳으로 유명하며 기념품점에서 그의 셔츠 등을 살 수도 있다. 항상 투어버스가 들르는 곳이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니 이 구단의 인기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탱고의 본고장 까미니토 입구. 마라도나,에비타,까를로스 까르델의 모습이 보인다.
탱고의 본고장 까미니토 입구. 마라도나,에비타,까를로스 까르델의 모습이 보인다.

◆이민자들의 춤, 땅고의 고향 '라 보카(La Boca)'

'라 보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동부에 있는 항구지역으로 보카구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19세기 후반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들어왔던 곳이다. 힘든 부둣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민자들이 저녁이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곳으로 나와 술 한잔으로 시름을 잊으며 일하는 아가씨를 유혹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추었던 선정적이고 격한 리듬의 춤이 탱고였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탱고가 이렇게 보카에서 '땅고'로 새롭게 태어나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작은 골목을 뜻하는 까미니또에 들어서면 우선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골목 좌우로 늘어 서 있고 몇몇 건물의 발코니에는 재미있는 모습의 인물상을 세워두었다. 이를테면 축구의 신이라 일컫는 마라도나, 굴곡의 생을 살다 간 에바 페론, 지금의 탱고를 있게 한 걸출한 가수 까를로스 까르델, 심지어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 같은 사람들을 기려 만들어 둔 것이다.

건물들의 색깔이 요란스러운 것은 그 당시 노동자들이 선박에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페인트를 집으로 가져와 칠하다 페인트가 모자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것이 보카를 상징하는 모습이 되었지만.

밤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낮에 찾은 보카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곳이었고 호객을 위해 몇몇 레스토랑에서 이따금 탱고를 시연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저곳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어느 가게에 들러 벨트를 하나 사며 레꼴레따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덕분에 쉽게 에바 페론을 만나러 갈 수 있었고 그때 산 벨트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이곳 노점에서 사 먹은 햄버거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고기를 갈아 만든 패티가 아니고 소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넣어주는데 저렴하고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다가 거금의 거스럼돈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왔다. 역시 이 나라의 소고깃값은 부러웠다.

호화로운 묘지장식. 문화재로 지정된 곳만 70여개라고한다
호화로운 묘지장식. 문화재로 지정된 곳만 70여개라고한다

◆호화의 절정 레꼴레따에서 만나는 애잔함

레꼴레따(Recoleta)는 이 나라 최상위층만이 묻힐 수 있는 도심 한가운데의 공동묘지를 일컫는 말이다. 그 호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면 들리는 곳이다. 이곳은 전직 대통령, 유명 정치가, 대재벌 등이 묻혀있는 곳으로 여기에 묘를 쓰려면 엄청난 금액의 돈을 들고도 자리가 날 때까지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니 죽어서도 다른 세상에서 지내게 되는 셈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는 것, 대리석으로 조각된 화려한 묘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예술성 그리고 후안 도밍고 페론의 두 번째 아내였던 에바 페론(Maria Eva de Peron)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묘지는 5헥타르의 크기에 가로세로 구획지어 늘어선 약 4,700개에 이르는 납골묘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도 대단하지만 대리석으로 꾸며진 각개의 납골실은 실물보다는 작으나 성당의 모습, 천사상, 생전에 살던 저택의 모습, 심지어 정원까지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 놓아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유독 에비타의 묘앞에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유독 에비타의 묘앞에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사생아로 태어나 무명가수와 배우에서 어린 나이에 영부인이 되었고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가 1952년 33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에바 페론의 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추모객이 찾는 곳이다. 사실 에바 페론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묘는 생전에 받던 국민적 인기에 비하면 화려하지도 않고 찾기도 쉽지않다.

사생아라는 출신과 무명시절 직업 때문에 페론가에 묻히지 못하고 영부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식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던 친부 '후안 두아르테'가족묘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들어오는 입구에서 위치를 체크하고 와야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찾으면 바로 이곳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녀를 추모하여 장미꽃을 바치고 있다.

'나를위해 울지말라'는 에비타의 묘비명
'나를위해 울지말라'는 에비타의 묘비명

그녀의 드라마틱한 짧은 일생은 이후 "에비타"(Evita:에바의 애칭)라는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여기에 나오는 "돈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라는 마돈나의 노래는 에바 페론의 동판 묘비명에 적힌 내용이다.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그거야 어쨌든 여태 살아온 모습과 죽은 뒤에 돌아볼 나의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이곳을 나왔다.

팔레르모공원 안에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팔레르모공원 안에 있는 거대한 인공호수

◆공원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 D라인을 타고 이탈리아광장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보기에도 시원한 팔레르모공원이 나온다. 편안한 숲과 광장이 있고 오리들이 노니는 거대한 인공호수도 만날 수 있다. 입장료도 없으니 여행자의 피곤한 발이 휴식을 취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세계 3대 공원이라 불릴 정도의 78,000㎡의 넓이를 자랑하는 곳으로 한 바퀴를 돌아보려면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수많은 거목으로 둘러싸인 숲속에서 주민들이 누워서 쉬는 모습은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평화롭게만 보인다. 정식명칭은 2월 3일 공원이지만 사람들은 팔레르모공원이라는 명칭에 익숙한지 근처에서 2월 3일 공원을 물으니 잘 몰랐다. 이 공원 외에도 많은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 산 마르틴공원 등 많은 아름다운 공원들이 있다.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탱고공연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탱고공연

◆격한 리듬에 젖어드는 탱고의 밤

해가 저물어 밤시간대에 그동안 벼르던 탱고공연을 보러 갔다. 오후 늦게 도착한 공연장에서는 간단한 탱고의 기본스텝을 가르쳐 주는데 원래 몸치라 혼자만 정신없이 바빴다. 서빙된 저녁식사와 함께 시작된 공연은 나이 든 진행자의 스토리텔링과 함께 악단의 연주에 맞추어 숨 가쁘게 진행되는데 춤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상당히 선정적이며 강렬한 느낌의 춤으로 다가왔다.

빠르고 동작이 화려한 춤은 댄스배틀 형태를 띄기도 하고 집단으로 또는 단독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강렬한 조명 아래 춤추는 남녀댄서들의 끊임없는 스텝과 숨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부둣가에 울려퍼지던 땅고의 흥에 조금씩 젖어 들었다.

박철우 자유여행가
박철우 자유여행가

박철우 자유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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