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한꺼번에 닥친 폐암·대장암…가족과 연락 안 한 지 30년, 숨이 막힌다

가난 피해 무작정 올라온 서울서 30년 가까이 길거리 생활
친구 덕에 시작한 사업, 한때 번성했지만 지금은 부채만 30억
기초생활수급 처지에 한 달 500만원 드는 항암 주사 꿈도 못 꿔

지난 26일 저녁 이덕호(가명·72) 씨가 항암 치료를 받느라 아침 일찍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방에 누워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26일 저녁 이덕호(가명·72) 씨가 항암 치료를 받느라 아침 일찍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방에 누워있다. 윤정훈 기자

"자고로 사람은 일단 서울로 가야 한다."

집안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소리였다. 어른들의 서울 타령은 여기서 농사만 뼈 빠지게 지어봤자 농노밖에 더 되겠느냐는 푸념으로 늘 마무리됐다. 그런 얘기를 엿들으며 어린 이덕호(가명·72) 씨는 서울에 대한 호기심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호기심이 동경으로 바뀐 건 서울에서 온 악극단의 어떤 공연을 본 순간부터였다. 돈이 없어 비좁은 화장실 창문 틈으로 훔쳐본 게 전부지만,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특히 주저 없이 드럼을 내리치는 연주자가 인상 깊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양푼이 그릇과 바가지를 늘어놓고 젓가락으로 두드려 봤지만 아쉬움을 달랠 수 없었다.

그땐 서울만 가면 다시 드럼을 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했던 덕호 씨는 주저 없이 서울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10살 때부터 노숙 생활…앵벌이·구두닦이·탄광 일하며 생계 이어가

덕호 씨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경주의 큰집에서 자랐다. 친할머니가 덕호 씨 부모님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덕호 씨를 큰아버지 아래 양자로 호적에 입적했다. 큰아버지 내외는 농사를 지어 겨우 생활을 이어 나갔기 때문에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난에 대한 불만과 드럼 연주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덕호 씨는 10살 무렵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사촌 누나의 저금통에서 350원을 훔쳐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완행열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한 덕호 씨. 5원짜리 호떡으로 끼니를 때우고 긴 나무의자에서 잠을 청했다. 노숙 생활 4일째 되던 날 난롯가에서 경주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또래 고향 친구 2명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각각 가수와 아나운서의 꿈을 안고 덕호 씨처럼 무작정 상경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세 명이 전철 등을 돌며 앵벌이를 했다. 좀 더 커서는 서울의 한 명문 고등학교 근처 극장 앞에서 친구들과 암표 장사, 구두닦이를 하며 밥벌이를 했다.

그렇게 덕호 씨는 20대 후반에 접어들 때까지 전국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책 장사, 인력회사 사무실 등 여러 일에 몸을 담았다. 한 술집에서 드럼 연주자로 일한 적도 있지만 손님과 다투는 바람에 그만뒀다. 드럼 연주자를 그만두고 경북 한 광산에서 현장 반장으로 일할 때 당시 그 지역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여성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했지만, 생계 문제로 2~3년 객지 생활을 하다가 돌아오는 식의 생활이 반복되며 가족과 정이 생길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가족과 연락을 안 한 지 30년이 다 돼 간다.

또다시 시작된 방랑은 덕호 씨가 49살이 됐을 때쯤 잠시 멈췄다. 서울 명문 고교 근처에서 구두닦이를 했던 시절, 덕호 씨는 그 학교에 다니고 있던 한 대기업 창업주의 장손과 친구가 됐었다. 간암 말기였던 친구는 덕호 씨가 잘 먹고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고, 이 유언에 따라 덕호 씨는 해당 기업의 폐기물을 유통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 한땐 연 1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번성했지만, 2017년 이후 경기 침체와 운영난이 겹치며 사업이 망했다. 집까지 팔아봤지만, 부도를 막을 수 없었다. 이후 공장에 있던 기계를 팔아 식당도 개업했지만 역시 잘 풀리지 않아 2020년 식당을 접어야 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생긴 무거운 빚, 여기에 폐암·대장암 한 번에 찾아와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며 결국 덕호 씨에겐 100억원 가까이 되는 빚만 남게 됐다. 이 중 절반 정도는 거래처 지인 등 개인적으로 빌린 돈이라 어찌저찌 탕감을 받았지만 30억 가까이 되는 부채는 고스란히 덕호 씨 몫으로 남아 현재 파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식당이 망한 2020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6월쯤 코로나19로 쓰러져 지역 한 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해 종합검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CT도 찍었는데 폐암 4기, 대장암 3기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뇨에 관상동맥 경화, 고혈압 등 문제도 줄줄이 발견됐다.

그전까지는 대구 지역 병원에 입원과 외래 진료를 번갈아 가며 암 치료를 진행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로 서울과 대구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2~3월 37만원, 4~5월 53만원 등 교통비로만 지금까지 거의 100만원이 나왔다. 이 교통비는 현재 도움을 받고 있는 요양보호사에게 빌려 겨우 마련했다.

더 큰 문제는 두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급여 비용이다. 암이 2개나 겹치니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각종 검사에만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500만원 정도를 썼다. 매달 나오는 정부보조금 84만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엄청난 출혈이었다. 항암 치료를 위해 혈중구 수치를 올려주는 주사를 맞아야 했다. 1번 맞는 데 10만원이나 드는 주사였지만 역시 보험 적용이 안 됐다.

현재 폐암은 말기라서 수술은 못 하고 항암 주사를 투약하는 치료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폐암 관련으로 6가지 약물 주사를 맞아왔지만 덕호 씨의 폐암이 특히 희귀종이고 변이가 심해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병원 측이 다른 대책으로 새로운 주사 또는 먹는 약 치료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지만 덕호 씨는 둘 다 고를 수 없었다. 모두 비급여 약품이라 주사는 한 달에 500만원, 먹는 약은 한 달에 400만원이나 들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서울인데, 이제는 서울에 가는 것이 버거운 일이 됐다. 오늘도 항암 치료를 받느라 아침 일찍 서울 병원을 다녀온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방에 누워있는 덕호 씨. 돌봐주는 가족 하나 없이 두 개의 암과 싸워야 하는 현실에 숨이 막힌다. 가족에게 연락해 볼까도 싶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생각으로 그 마음을 접는 덕호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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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2대째 내려온 샤르코-마리-투스병으로 힘든 나날 보내고 있는 김광명 씨에게 2,113만원 전달

자신과 아들에게 2대째 이어지고 있는 희귀 질환(샤르코-마리-투스병)으로 힘겨워 하는 김광명(매일신문 5월 16일자 10면) 씨에게 2천113만3천983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조득환 10만원 ▷서준교 5만원 ▷전우식 5만원 ▷진국성 5만원 ▷이상준 4만원 ▷김점숙 3만원 ▷김종균 3만원 ▷이옥희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일성 2만원 ▷신종욱 2만원 ▷김갑용 1만5천원 ▷김경희 1만원 ▷박상옥 1만원 ▷이진기 5천원 ▷이장윤 2천원 ▷'복나누기' 1만원 ▷'김명숙도움' 3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게임중독 남편과 이혼한 뒤 모자보호시설·월셋방 전전하다 생활고로 빚 6천만원 힘겹게 상환하며 턱관절내장증 앓고 있는 딸 키우는 윤미소 씨에게 2천86만원 성금

게임중독 남편과 이혼한 뒤 모자보호시설·월셋방을 전전하며 턱관절내장증을 앓고 있는 딸을 키우는 윤미소(매일신문 5월 23일자 10면) 씨에게 49개 단체, 143명의 독자가 2천86만7천59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한정민)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광고기획감각(손근찬)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근우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주)(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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