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년 전 경북 청도에서 '산사태 원인'이자 피해를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태양광 발전 패널(매일신문 2018년 7월 4일·14일, 2020년 1월 20일·10월 12일 등 보도)이 올여름 집중호우 때 영주·봉화에서 또 한번 말썽을 빚었다.
시설을 지을 때 주변 초목과 토사를 제거하느라 비탈면 침식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사방댐 설치, 배수로 규격 등 별다른 설치 기준이 없어 대책이 시급하다.
◆영주·봉화서 태양광시설 사면 유출, 붕괴…소 축사 매몰 폐사도
1일 경북 영주시는 지난달 15, 16일 집중호우로 지역 내 7개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사면이 유출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영주시 조와동 태양광 시설 1곳에서는 임야부가 유실돼 태양광 시설이 쓰러지면서 토사와 함께 인근 축사를 덮쳐 소가 떼죽음 당하는 피해가 났다.
해당 시설은 영주시가 지난 2008년 조와동 한 야산 13만1천239㎡에 3천㎾ 규모 태양광 시설을 도시계획시설사업으로 허가해 2013년 준공한 것이다.
기자가 토사 유출 현장을 확인한 결과 임야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인근 축사와 농장을 뒤덮고 있었다. 산사태로 무너진 태양광 시설과 임야는 복구를 시작조차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언제 다시 비가 올지 몰라 다급했던 농장주는 추가 산사태 피해를 막고자 축사와 태양광발전 시설 사이에 콘크리트 옹벽을 설치하고 있었다.
축산농 이모 씨는 "태양광 시설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축사를 덮치는 바람에 키우던 소 17마리가 매몰 됐다"며 "태양광 시설 설치 당시 수리 계산이 부족했고, 단지 내 배수로도 가정용 규격 등으로 설치했다. 최종 방류관 사이즈도 부족하고, 패널 설치 시 독립 기초 사이 지중보도 설치하지 않아 토사 유출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봉화군도 앞서 석포면 등 태양광 발전시설 8곳(2곳은 시공 중) 일대에서 산사태가 발생, 축대가 붕괴되면서 토사가 인근 농경지를 덮쳐 고추밭과 머루밭, 벌통 등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수년 전 청도·횡성도 집중호우에 태양광시설 지반 붕괴…인명피해도
이번 사태는 수년 전 이미 비슷한 경고가 나타난 바 있어 '예견된 피해'라는 게 중론이다.
2018년 7월 3일 청도 매전면 한 산비탈의 민간 태양광 발전시설 일대에서 토사 약 300톤(t)이 그 아래 나무들을 일제히 뿌리뽑으며 흘러내리는 산사태가 났다.
사고 전 사흘 동안 누적 강수량이 120㎜에 달했고, 나무를 베어낸 일대 토양이 빗물을 머금어 토압이 커지면서 태양광 시설이 붕괴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10월 강원 횡성군 둔내면에서도 산 위쪽 태양광 시설 지반이 무너지면서 산사태를 유발, 토사가 주택을 덮치면서 집에 있던 70대 주민이 숨졌다. 정부 원인조사 결과 앞선 시설 조성 과정에서 지반 보강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관련, 뚜렷한 보상책이 없다는 점도 피해 주민들 속을 태운다. 일부 피해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 업체와 피해보상 송사를 앞두는 등 이중고를 겪는다.
한 피해 주민은 "태양광 업체에서 보험사에 사고 사실을 신고했다는데 아직까지 연락 온 것이 없다"며 "조속한 피해보상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 현재 태양광 공사 당시의 설계도면과 관련된 서류, 태양광 집열판 구조물 설계 서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영주시에 정보 공개를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양광 발전 업체 관계자는 "태양광 시설에 보험이 가입돼 있어 현재 보험회사에 재난 피해를 접수한 상태다"며 "농장 보험사정인과 피해 보상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주시 관계자는 "산지관리법상 경사도 기준이 강화돼 최근에는 산지에 태양광발전을 설치하려는 사업자들이 거의 없다. 태양광발전 시설에 대한 안전 문제는 정부가 설치 기준을 강화하는 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태양광 시설 '산사태 예방 규정' 미흡…피해복구 계획만 내면 돼
상황이 이런데도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함에 있어 산사태 예방 목적의 규정은 없다시피하다.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때는 환경법, 산지개발법, 국토개발계획법, 전기사업법 등에 따라 보전산지(개발행위 제한 지역)를 제외한 발전사업 가능 부지를 선정하고 산림·토지에 대한 피해복구 설계서를 제출한 뒤 개발행위 및 전기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규정 상 비탈면 경사도가 평균 10도, 최고 15도인 곳이면 얼마든 설치할 수 있고, 그 밖에 초목 조성 및 땅 다지기 의무나 배수시설 규격 등의 기준은 없다.
경북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관련법에는 민간이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 시설의 기초시설이 토압을 지지하는지, 구조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근거가 없다"며 "태양광 설치 주체가 전기사업 허가를 받을 때 지자체 개발행위 허가를 병행토록 하면 사업 안전성을 조금이라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유일한 기준 '경사도' 또한 2018년 태양광 산지 일시사용허가제도를 도입하면서 허가 기준을 당초 25도에서 15도로 강화한 결과지만, 정책 검토 과정에서 연구기관이 '산사태 방지' 목적으로 주문한 10도보다는 완화한 결과로 나타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점차 잦아지는 게릴라성 폭우 등에 대비, 지질학적 분석을 강화하고 설치 기준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재 경북대 공과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산지관리법 개정 전인 2018년 이전까지 야산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은 사면 안전성 검토와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한 기초 안전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예고된 재난"이라며 "앞으로 인허가 과정에 완벽하게 구조 해석된 사면·기초 안전성 검토서를 첨부토록 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태양광 시설업체 관계자도 "기록적인 호우 탓도 있겠지만, 태양광 발전시설 붐이 일었던 과거 상당수 개인이 허가를 받아 공사를 추진하는 바람에 난개발이 이뤄졌다"며 "태양광 주변 배수시설 등 안전시설 설치 기준을 조속히 강화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태양광 시설 관련 산사태가 발생한 영주시와 봉화군에서는 지난 2015년 이후 임야를 깎아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영주시 35곳, 봉화군이 44곳에 이른다.
또한 경북도내 태양광 발전시설은 2018년 4천여 곳에서 지난해 1만6천여 곳으로 5년 사이 4배 넘게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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