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에 사상 초유의 비보가 날아왔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용역사업 입찰참가자격 제한'에 직면한 것이다. 내년 1월까지 학술연구 용역과제에 대한 조달청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다.
경북대는 지난 6월 '입찰참가자격 제한'이라는 강수를 둔 경기도와 행정소송을 이어간 끝에 패소한 바 있다. 이후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대체할 제재를 찾느라 동분서주했지만 끝내 사태를 돌이키지 못했다. 1천200명이 넘는 경북대 교수 전체가 한동안 연구용역 수주 불능 상황에 놓인 것이다.
◆용역사업 입찰참가자격 제한에 문제 없다는 법원
이번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촉발한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가 발주한 8천686만 원 가액의 용역이었다. 경북대 농과대학 A교수는 '잣 구과를 이용한 기능성 미용제품 개발 및 산업화 용역'을 낙찰받았다. 기능성 세포 앰플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한 용역이었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는 ▷보고서 ▷시제품 ▷특허 출원 자료 등을 과업 완료시 제출물로 요구했다.
잡음은 원본데이터 지연 제출에서 나왔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A교수는 용역 결과 검증을 위해 필요한 원본데이터를 지연 제출했다. A교수가 20년간 축적한 실험 디자인 방법, 연구 진행 방법, 결과분석법, 자신이 직접 설계한 실험결과 계산 및 통계 분석이 가능하도록 편리하게 프로그램해둔 연구 노하우가 원본데이터에 담겨 있다는 게 이유였다. A교수 측은 "산림환경연구소 연구사가 우리가 갖고 있는 연구결과를 도용할 부정한 목적으로 원본데이터 제출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는 "A교수는 우리가 요청한 지 1년 2개월이 지난 2017년 2월에야 원본데이터 등을 제출했다. 그마저도 부실했다. 검토 결과 원본데이터 파일의 내용과 최종보고서의 내용 중 5개 부분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고서에 기재된 시제출제품의 성분 표기와 용역 이행의 결과물로 제출한 시제품의 구성 성분도 서로 다른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산림환경연구소 측은 또 "시약 부당 구입 및 예산 유용이 확인되는 상황이었다"며 "시제품도 불완전했는데 저온에서 보관할 경우 금색 알갱이가 발견돼 상품화가 가능한 정도의 품질을 못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계약의 불성실 이행 등을 근거로 경기도(계약심의위원회)가 2019년 3월 경북대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결정하기까지의 전말이다.

◆초유의 사태 피하지 못한 경북대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곧바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 취소 소송으로 대응한다. 이들이 2심에서 패소한 것이 올해 6월이다. 산학협력단은 연구관련 협약, 구매 등 행정적 업무를 하며 교수 등 연구자를 돕는 일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이 소송에서 "관리책임 소홀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으로 비례 원칙에 어긋나는 등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경북대 측에서 용역계약을 이행하면서 부실하게 하거나, 조잡하게 하거나,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로서 '설계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는 등 부정한 시공을 한 자'에 해당하고 입찰참가자격 제한기간은 5개월 이상 7개월 미만인데 이 사건 처분상의 제한기간은 최저한인 5개월에 불과한 점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처분이 비례 원칙 위반 등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여 위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달리 그와 같이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경북대가 내민 최후의 카드는 경기도 계약심의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경북대는 최근까지 홍원화 총장을 비롯한 산학협력단 관계자들이 수차례 경기도를 찾았다. 이들은 한 연구자의 과오로 교수 1천220여 명과 연구원 2만7천여 명 전체가 5개월간 피해를 보게 되는 행정처분은 과도하다며 다른 제재 방식을 택해달라고 호소했다.
경기도 측은 25일 "소송 결과와 사건 경과를 검토해볼 때 처분을 변경할 수 있는 경미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변경이 불가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경북대에 보냈다. 이로써 경북대는 다음달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5개월간 학술연구용역과제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다. 다만 지자체 보조금 사업 및 일반 연구 과제는 협약이 가능하다.
◆경북대, "이번 사태 계기로 전체적 시스템 점검하겠다."
경북대 측은 허탈해하고 있다. 특히 수 차례의 법원 판결에서 해당 용역 수행이 "계약을 이행할 때 부실하게 하거나 조잡하게 하거나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에 해당한다(지방계약법 시행령 제92조 1호)"는 판결이 난 상황이라 해당 연구책임자(A교수)의 책임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안의 심각성을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살펴보지 못하고, 연구 용역 수행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A교수의 일방적인 주장에 이끌려 다닌 것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에 이르게 한 사건이 8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그 동안의 조정, 화해권고 등의 기회가 현재 대학본부 체제가 시작되기 전의 일이어서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경북대 관계자는 "몇 년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면서 법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당사자 간 조정과 화해권고가 있었음에도 산학협력단이 권고를 수용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추후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소송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보다 객관적이고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연구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 연구감사 관련 행정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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