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맏딸 재화가 인사 올립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첫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시던 집 근처를 지나다보면 왠지 어머니가 계실 것 같은 느낌에 발걸음이 머뭇거려지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어머니가 저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봅니다.
어머니를 추억하면 참 쉽지 않은 삶을 사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릴 때는 광부였던 아버지 뒷바라지 하는 가정주부로써 사셨지만 아버지가 진폐증으로 광부 일을 그만두면서 어머니의 삶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지요. 가족이 모두 경주에 내려와서 어머니가 처음 시작한 일이 건어물가게였습니다. 하지만, 장사는 처음이셨던지라 잘 되지 않았고 결국 장사를 접고 대구로 와서 비산동에서 구멍가게를 하셨죠.
대구에 오면서부터 어머니는 참 억척스러워질 수 밖에 없으셨죠. 아버지는 목수로 여러 공사장을 전전하면서 돈을 버셨고 어머니는 구멍가게를 열어 장사를 했지만 살림이 나아질 길은 참 멀어보였습니다. 그 때 어머니와 함께 팔달시장에 가서 구멍가게에 팔 채소를 떼러 같이 갔었지요. 그 때 팔달시장과 구멍가게의 거리가 꽤 멀었는데도 우리 모녀는 걸어가서 채소를 떼 오고 그 무거운 채소를 이고 지고 하면서 걸어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서 번 돈을 어머니께 드렸고, 제 월급과 어머니가 모은 돈들이 모여 끝끝내 비산동의 한 시장 상가를 분양받아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때 어머니 손녀인 제 딸이 자기 어렸을 때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하대요. 어머니가 키워주신 덕에 할머니에 대한 정이 참 많아서 그걸 다 기억하네요.
재숙이는 어머니가 참 고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막내다 보니 어릴 때에는 어머니께 어리광도 많이 부렸을테고 의지도 많이 했겠죠. 또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와 가까이 살면서 많이 의지가 됐었다고 해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호국원도 같이 가면서 서로 정을 많이 나누기도 했다네요. 재숙이도 어머니 생각을 참 많이 하는지 어머니가 떠나가신 뒤 지인 중 한 분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어머니 생각나서 같이 울었대요.
맏이라서 어머니의 힘든 삶을 자식들 중에 가장 먼저 보고 많이 봤는데, 그래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데 앞장서야 되는데 막상 기억나는 건 어머니께 걱정을 안겨드리고 힘들 때 잘 해 드리지 못한 것들만 생각납니다. 사업을 하다가 정치를 하고, 그러면서 중간에 공천을 못 받은 탓에 본의 아니게 시의원으로써 활동을 쉬게 됐을 때, 어머니가 마음아파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게다가 10여년 전부터 아버지 간병때문에 영주와 대구를 오가시면서 지쳐하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셨던 것들만 생각납니다.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쓰신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형제 간에 우애있게 살거라'는 말이 자주 보였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마지막 유언으로 저와 저희 4남매에게 남겨주신 말 같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다니신 경로당에는 요즘도 어머니의 안부를 여쭤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머니가 사교성이 참 좋으셔서 요즘 태어났으면 정말 사회적으로 다양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젊었을 때는 가정을 꾸리고 저희 4남매를 키우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셨고 나이가 드셔서는 자식들이 잘못될까 노심초사하셨고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던 어머니. 저희 자식들이 잘 되는 모습 꼭 보여드릴테니, 이제는 하늘 위에서 편히 쉬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가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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