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극장가 대목 온다…추석 연휴 ‘한국영화 3파전’

거미집·천박사 퇴마연구소·1974 보스톤 개봉

'거미집'의 한 장면.
'거미집'의 한 장면.

추석은 늘 극장가의 대목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극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올해는 연휴가 6일이나 길어져 기대를 안고 한국영화들이 27일 대거 개봉한다. 송강호 주연의 블랙 코미디 '거미집', 강동원의 코미디 활극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 스포츠 드라마 '1947 보스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풍자 '거미집'

1970년대 영화계는 열정과 현실의 충돌로 고민하던 시대였다. 시나리오는 장면마다 붉은 줄이 그어져 '부분 수정'이라는 검열을 받아야 했고, 공무원들이 촬영장에 드나드는 것도 일상이었다.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은 걸작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의 소유자. 싸구려 치정 영화나 만든다는 혹평에 시달리는 자신을 뛰어넘고 싶은 것이다. '거미집'이라는 영화를 다 찍은 어느 날, 그는 꿈을 꾼다. 이튿날 꿈에서 본 대로 영화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것 같다. 걸리는 시간은 이틀. 그래서 재촬영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제작사는 냉소적이며, 주연 배우 이민자(임수정), 강호세(오정세)는 꼬인 촬영 스케줄 때문에 불만이 가득하다.

'거미집'은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거머쥔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두 가지 톤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이 흑백영상의 스릴러 느낌이라면, 스태프들과 부딪치면서 영화를 찍는 이야기는 풍자 코미디의 색채다.

옛날 영화 속 배우들의 과장된 말투와 몸짓 등이 웃음을 자아낸다. 세트장과 영화사 사무실 등 1970년대 고풍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김추자, 사랑과 평화의 흘러간 노래도 그런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거미집'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고(故) 김기영 감독의 유족이 고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극적 합의를 끌어내 27일 정상적으로 개봉을 할 수 있게 됐다.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한 장면.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한 장면.

◆퇴마사의 코미디 활극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가짜 퇴마사의 활극과 액션, 코미디와 미스터리 등 갖가지 요소가 섞인,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다.

대대로 마을을 지켜온 당주집 장손이지만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그는 '신기'보다는 '말빨'로 의뢰인을 홀리며 사건을 해결해 왔다. 어느 날 귀신을 보는 유경(이솜)이 거액의 수임료를 내며 사건을 의뢰한다. 천박사는 파트너 인배(이동휘)와 함께 유경의 동생 유민(박소이)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쫓으며 자신과 얽혀 있는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김홍태(후렛샤) 작가의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설경은 귀신을 가두기 위한 부적을 뜻한다.

'전우치'를 통해 코믹 연기를 잘 소화한 강동원 배우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퇴마라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가볍고 유쾌한 질감으로 극을 끌어간다. 기계로 퇴마술을 조작하는 등 신세대식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김성식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98분. 12세 이상 관람가.

'1974 보스톤'의 한 장면.
'1974 보스톤'의 한 장면.

◆감동 스포츠 실화 '1947 보스톤'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가슴 벅찬 도전을 그렸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의 신작. 서윤복, 남승룡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마라톤 유망주 서윤복(임시완)은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다. 그는 어느 날 손기정으로부터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출전을 제안 받는다.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이 셋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서사가 완성된다.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손기정의 가슴 아픈 사연, 조국 해방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세계 기록을 경신한 서윤복, 그를 코치하며 승리로 이끈 남승룡. 가난하고 힘든 시기 국민들에게 뿌듯한 감동을 선사한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서사를 탄탄하게 쌓아 시대적 울분과 함께 시원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108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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