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한국영화가 사라진다

이승연 지음 / 바틀비 펴냄

한국영화산업의 핵심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제안한 책, '한국영화가 사라진다'가 나왔다. 영화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영화산업의 핵심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제안한 책, '한국영화가 사라진다'가 나왔다. 영화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승연 지음 / 바틀비 펴냄
이승연 지음 / 바틀비 펴냄

올해는 유난히 한국영화 실적 저조 소식이 짖다. 올해 1분기(1~3월)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한 작품은 '교섭'(172만여 명) 한 편뿐이었고 4월에는 장항준 감독이 이끈 영화 '리바운드'와 이병헌 감독의 '드림'이 개봉하며 흥행 기대감을 모았지만 100만 관객의 문턱에서 그쳤다. 범죄도시3 개봉과 함께 하반기 들어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 부활은 고개를 드는 듯했지만 큰 화제성은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한국영화 산업은 코로나19와 OTT 성장에 타격을 크게 입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2020년에는 매출과 관객 수가 코로나19 전보다 4분의 1로 줄었다. 그나마 지난해엔 엔데믹으로 회복세를 점차 보였지만 팬데믹 이전만큼 미치지 못했다. OTT의 급성장도 영화산업생태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그에 대한 여파로 손실을 입은 극장은 관람료 상승 결정을 내렸고 영화발전을 위한 기금도 곧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OTT의 성장. 극장 위기는 정말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일까. 아니다. 두 가지의 이유는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준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를 명확히 짚은, 한국영화산업의 핵심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제안한 책, '한국영화가 사라진다'가 나왔다.

저자인 이승연 작가는 한국영화 위기의 진짜 원인으로 묵은 폐단을 지목한다. 한국영화계를 병들게 했던 주체는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들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전부터 영화관계자들은 이 폐단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멀티플렉스는 영화 콘텐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한국영화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결국 극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정체성을 찾고 다양성과 연결되는 좋은 영화, 콘텐츠를 승부를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OTT성장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저자는 맹렬한 기세로 성장하던 OTT 역시 벌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OTT 업계에서도 명암이 확연히 갈린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특수는 OTT의 절대강자인 넷플릭스에만 해당할 뿐 국내 OTT의 적자 폭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OTT 간의 치열한 경쟁과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위한 제작비 상승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에게 넷플릭스란, 넷플릭스에게 한국이란 무엇일까.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가져온 경제적 파급효과는 5.6조원인 데다 약 1.6만명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난제도 많다. 창작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계약방식과 조세 회피, 망 사용료 논란 등이다. 국회에서 관련 저작권법 개정논의를 막 시작했지만 갈 길은 멀다. 저자는 영화산업 침체 속에서 우리와 넷플릭스가 상생하기 위한 대원칙을 세우고 합의를 이끌어내야한다고 말한다.

책은 크게 1,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이렇듯 코로나19로 극장이 처한 현실과 OTT 상황을 진단했다면 2부에선 한국영화산업의 중추기관과 영화발전기금, 영화제에 대해 논한다.

한국영화산업의 중추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는 코로나19 이후 상영관 입장권부과금 급감과 예산 축소, 정체성과 역할론 부재로 존재가치마저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저자는 영진위가 다시 살기 위해서는 이 기관이 안정기에 진입할 때까지만이라도 국가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영진위 뿐만 아니라 핵심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에 대한 진단도 함께 이어진다.

영화제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현재 70개가 넘는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저자는 지자체들이 앞다퉈 개최하는 영화제들은 제각각 뚜렷한 정체성과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선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와 경제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원화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꼭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영화에 관심은 높지만 영화산업의 현실을 깊이 파고든 대중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은 물론 업계 종사자와 정책입안자들에게도 긴요한 책이 될 수 있겠다. 332쪽,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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