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아라문의 검’, 문명과 국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문화인류학적 관점이 담긴 상상력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역사의 기록이 없던 선사의 시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은 그렇게 국가가 탄생하던 이전의 세계로 시간을 되돌린다. 하지만 이 신화의 시대의 이야기는 그 판타지 속에 문명과 국가의 탄생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을 담았다.

◆'아스달 연대기' 시즌 2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은 지난 2019년 방영됐던 '아스달 연대기'의 시즌2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작가도 '아라문의 검' 제작발표회에서 인정했듯 '아스달 연대기'는 대중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그건 이 작품 자체가 워낙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에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면서, 그 현실적 단초로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즉 무한 상상을 통한 허구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야 하지만, 그 허구가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그로 인해 국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 하는 것을 문화인류학 같은 학문적 기초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난제를 가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래서 '아스달 연대기'라는 이 낯선 세계가 어딘가 전 세계 공통적으로 벌어졌을 문명의 과정이라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나왔던 우리만의 차별적인 서사 또한 갖춰야 할 걸 요구했다. 하지만 초반에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하는 서사가 등장하자 그 신화와 이 판타지의 세계가 주는 이질감이 잘 섞이지 않는 상황이 생겼다. 오래도록 교과서 한 편에서 읽고 상상해왔던 세계가 허구적 판타지 속으로 들어오자 생겨난 문제였다. 게다가 이 낯선 세계는 이그트니 뇌안탈이니 하는 종족 등장하고 와한과 아스달 같은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 심지어는 뇌안탈이 쓰는 그들만의 언어가 등장하는 식으로 그려져 세계관 자체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아스달 연대기'가 역사가 없어 상상력으로 그려낸 선사의 세계를 하나하나 학습하며 받아들여야 비로소 서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됐다. 치열한 문화인류학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그려낸 세계는 그래서 놀랍도록 디테일들이 살아있었지만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한계가 생겨난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아스달 연대기'는 그 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맺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밑그림이 그려져서 인지 시즌2로 돌아온 '아라문의 검'은 '아스달 연대기'의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서사의 재미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문명이 먼저 발달해 정복전쟁을 하며 세력을 넓혀온 아스달을 이끄는 타곤(장동건)과 이들과 대항해 부족들을 결합해 그 연맹을 이끄는 재림 이나이신기 은섬(이준기)의 대결구도를 드라마는 먼저 벌판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전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스달 연대기'에서 송중기와 김지원이 했던 주인공 은섬과 그의 쌍둥이 형인 사야 그리고 탄야 역할을 '아라문의 검'에서는 이준기와 신세경이 맡아 배우가 교체됐지만, 워낙 곧바로 극적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면서 그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쌍둥이지만 어려서 헤어져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며 아스달의 총군장이 된 사야와 이나이신기가 된 은섬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면서 은섬이 사야 역할을 또 사야가 은섬 역할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선사 시대 문명 이야기

'아라문의 검'은 선사 시대의 판타지를 담고 있어 '왕좌의 게임' 같은 신화적 상상력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인간과는 다른 뇌안탈 같은 종족은 괴력을 발휘하고 보라색 피를 가진 이그트 역시 위급한 순간에 눈빛이 돌변하며 초인적인 힘을 드러낸다. 제사장인 탄야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거나, 마음속으로 말을 전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아라문 헤슬라가 탔던 전설적인 말 칸모르는 모든 말들을 조종하는 힘을 가졌다. 또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의 상징인 세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태어나 결국 이 세상을 끝낼 것이다" 같은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예언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판타지와 예언이 존재하는 세계지만 그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이야기다. 뇌안탈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하기 이전 종족을 의미하고 이그트는 뇌안탈과 피가 섞인 혼혈을 의미한다. 즉 종족의 진화는 섞임과 자연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걸 이 가상의 인물 설정들은 보여준다. 또 칼과 방울, 거울은 '아라문의 검'에서는 다름 아닌 은섬과 탄야 그리고 사야를 상징하는 물건들인데, 이건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국가 같은 문명의 탄생에 필요한 세 요소로 제시된다. 즉 칼이 군사력을 의미한다면 방울은 종교의 힘을 의미하고 거울은 인간의 지식이나 부를 의미한다. 국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이 필수적이고, 불안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종교가 필요하며 나아가 타종족이나 타문화를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와 더불어 이를 습득해 문명을 발전시키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아라문의 검'은 칼과 방울, 거울을 상징하는 세 인물의 모험담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명의 탄생이 가져온 정복전쟁으로 인해 자연적인 삶이 파괴되는 인류의 문화사 또한 담겨있다. 그것은 아스달이 침략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연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와한족 사람들이 아스달에 노예로 끌려간 후 그 문명을 맛보고 변화해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탄야의 아버지이자 남다른 손기술로 청동은 물론 철기 기술까지 발전시키는 열손(정석용)은 와한족이었지만 아스달에서 격물사로서 지위를 얻게 되자 권력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문명은 그래서 자연적 삶으로부터 벗어난 인류가 그 욕망으로 인해 무한 경쟁하게 되는 원인으로 제시된다. 이처럼 '아라문의 검'은 선사 시대의 신화적 서사를 그려나가고 있지만, 그 과정의 끝에 국가와 문명의 탄생이라는 인류학적 그림들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담고 있다.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스틸컷. tvN 제공

◆박상연, 김영현 작가의 사극

이 작품을 쓴 박상연, 김영현 작가는 알다시피 대중들에게 사극으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대장금'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영현 작가는 '공동경비구역 JSA', '고지전' 같은 영화 작가로 이름을 알린 박상연 작가와 의기투합해 회사를 설립하고 그 후로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를 거쳐 '아스달 연대기', '아라문의 검'을 함께 작업했다.

그 일련의 흐름을 보면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서 이들 작가들이 가졌던 고민과 도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선덕여왕' 같은 역사를 재해석한 퓨전사극을 그리던 작가들은,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추리극적 장르를 활용해 그려낸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보다 과감한 상상력을 더하는 팩션으로 나아갔다.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이성계와 정도전, 이방원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과 분이, 땅새, 무휼 같은 허구적 인물의 서사로 그려내면서 역사와 역사가 담지 않은 민초들을 조선건국의 양축으로 한 그릇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아스달 연대기'와 '아라문의 검'은 이제 아예 역사가 없는 지대를 문화인류학적 상상력을 채워 넣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가들의 사극 도전과 진화의 끝을 예감할 수 있다. 역사와 허구의 결합일 수밖에 없는 사극에서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아라문의 검'은 충분히 그 의미와 가치를 갖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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