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용서도 자비도 없는 복수극…리뷰 '시수'

퇴역한 '할배'의 화끈한 복수…타란티노식 '불사신' 설정으로 수위높은 묘사 선보여

영화 '시수'의 한 장면.
영화 '시수'의 한 장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 엄벌을 받는 이야기는 아주 고전적인 스토리다. '존 윅'도 그랬고, '더 이퀄라이저'도 그랬다. 고전 서부영화까지 합치면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클리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끝판왕'에 가까운 핀란드 영화가 25일 개봉한다. '시수'(감독 얄마리 헬렌더)이다. 용서도 자비도 없다. 오직 복수만이 존재할 뿐. 1.5ℓ 사이다를 들이킨 듯 시원한 복수극을 선사한다.

'시수'는 전쟁을 소재로 한 1인극의 서부영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대사를 최소화하고 플롯도 간결하며 캐릭터는 극단적이며 복수의 수단은 '청불'형 화끈 그 자체이다. 나치의 만행에 화가 치민 핀란드인의 분노가 만들어낸 스타일리시한 잔혹한 복수극이다.

때는 1944년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이고, 주인공은 '할배'다. 그는 전쟁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금을 캐는데 몰두한다. 마침내 금맥을 발견해 금을 말에 싣고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그가 가는 길에 패잔병들을 만난다. 1944년 모스크바 휴전 협정으로 핀란드를 횡단해 노르웨이로 퇴각하는 100여 명의 독일군이다. 그들은 핀란드인들을 목매달고, 닥치는 대로 마을을 불태우는 잔학무도한 전쟁 괴물들이다.

'할배'의 금을 본 나치 잔당들은 눈이 돌아간다. 어차피 돌아가도 전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에 금으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그들은 이 '할배'가 허약한 금 채굴하는 노인인 줄 알았다. 죽이고 뺏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이 '할배'는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란 것을.

영화 '시수'의 한 장면.
영화 '시수'의 한 장면.

'시수'는 '무시무시한 결단력으로 주먹을 불끈 쥔' 정도로 번역되는 핀란드어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불굴의 용기 같은 것이다.

이 '할배'는 소련과의 '겨울 전쟁'에서 가족이 몰살당한 뒤 소련 군인 300 명 이상을 몰살 시킨 아타미 코르피라는 인물이다. 괴력의 불사신 '코사이'로 별명이 붙은 죽음의 1인 부대다. 도저히 죽일 수 없는 복수의 화신이다.

주인공 아타미 코르피는 핀란드 저격병 시모 해위해를 모티브로 설계됐다. 그는 소련과의 '겨울 전쟁'에서 534명의 소련군을 사살하였는데 그것도 조준경도 없이 사냥하듯 전과를 올렸다. 소련군은 그를 '백사신'(白死神·White death)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시수'가 리얼리즘 보다는 타란티노식 영화인 것은 '불사신'이라는 초현실적 설정 때문이다. 그는 죽지 않는다. 총탄이 쏟아지는 물속에서도 독일군의 멱을 따 공기를 흡입한다. 목을 매달아도 그는 튀어나온 못 하나에 의지해 숨을 쉰다. 개연성을 밥에 말아 먹는 설정이지만, 그 모든 것이 용서 되는 신통한 영화다.

바로 악당이 독일 나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파리 목숨으로 여길 뿐 아니라 여자들을 싣고 다니며 욕구를 해소한다. 지뢰를 묻고 그 위를 걸어가도록 강요하는 죽여도 시원찮을 악당들이다. 물론 이 여자들은 '할배'에 의해 해방돼 총을 들고 나선다.

당연히 살상 묘사는 '청불'이다. 수위가 상당히 높다. 탱크에 깔리고, 지뢰로 산산조각이 나고, 칼이 관통한다. 튀어나온 못에 찢어진 살을 끼워 넣기도 한다.

'시수'는 2차 대전을 소재로 하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기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복수극이다. 직진 차선에서 돌아보지 않고 돌진한다. 복잡한 복선이나 정교한 플롯도 없다. 곡괭이 하나로 맞서다, 결국 그들의 무기로 끝장을 내 버리는 즉결처형같은 영화다.

영화 '시수'의 한 장면.
영화 '시수'의 한 장면.

그래서 다분히 서부극의 전형이 그려진다. 세상을 등지고 홀연히 살고 싶지만, 그를 놓아주지 않는 가혹함에 맞서는 1인의 황량함이 묻어난다. 한때의 복수를 마친 늙은 인생을 다시 건드린다. 이 전쟁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싶었다. 자신이 힘들게 캔 금으로 노후를 보장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나의 내면 깊숙이 숨겨둔 역린을 건드린다.

금이라는 대상 또한 서부극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설정이다. 눈이 멀어 죽음을 앞당긴 수많은 서부극의 빌런이 독일 패잔병 장교에 투영된다.

촬영 또한 깔끔하고 스토리 또한 스피디하게 전개돼 9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통쾌한 복수극을 그린 킬링 타임용 영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소화제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영화이다. 91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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