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서울의 봄’

1979년 12월 12일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서울의 봄은 오지도 않았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의 꽃향기를 기대했던 그 따스한 봄은 결국 권력에 눈이 먼 일부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차가운 겨울은 계속됐다. 독재의 끝에서 다시 이어 붙인 독재. 그것은 과거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민족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하나회'라는 사조직의 번성과 '친구야, 우리가 남이가'라는 사리사욕만 있었을 뿐이다.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에서 쿠데타의 성공을 위해 전방 부대까지 출동시킨 전두광(황정민)은 이렇게 말을 한다. "김일성이 오늘 절대 내려오지 않아." 국가의 안위마저 개인의 권력욕에 끌어 쓴 그의 무모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사다.

그리고 또 이렇게 얘기한다. "친구야. 모두들 명령을 내리려고 하지. 아니야. 강력한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주기를 바라지. 난 그들에게 떡고물을 왕창 아가리에 쳐 넣어줄 거야."

이것이 영화 '서울의 봄'이 이야기하려는 핵심이고, 44년 전 12월 12일, 그날로 관객을 몰아넣은 감독의 의도다. 그 의도는 깊은 탄식과 울분, 슬픔을 수반한다.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은 무겁고, 숨은 막힌다. 몇 번이나 한숨을 쉬어야 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밤 시작된다. 벙커에 모인 군인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고, 그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규합해 세를 불려 간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그런 전두광이 위험한 것을 알고 그의 싹을 자르려고 한다. 강직한 군인 이태신(정우성)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하고 전두광으로 동해로 전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조급해진 전두광은 9사단장이자 친구인 노태건(박해준)과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모두가 알고 있는 12·12 쿠데타의 역사적 흐름이다. 등장인물의 이름 또한 모두 실존 인물에서 따왔다. 정상호는 정승화 대장, 이태신은 장태완 소장, 김준엽은 김진기 헌병감, 최한규는 최규하 대통령에서 유추된 이름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영화는 뚫으려는 자 전두광과, 막으려는 자 이태신의 치열한 9시간의 공방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 단위로 이어지는 공세와 수세는 긴장감이 넘친다. 참모총장의 체포와 대통령의 재가, 하나회의 불안과 규합, 육군참모본부의 엉성한 대응 등이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비록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촉박하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에서 세 가지 유형의 군인이 나온다. 군인의 본분을 지키려는 자, 군인의 본분을 저버린 자, 유리한 편에 붙으려는 자. 이태신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는 헌병감 김준엽 등이 본분을 지키려는 군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상관들에 의해 좌절한다.

시나리오도 힘이 있지만, 스토리를 긴박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꺼져가던 하나회의 전투력을 살려내는 전두광 역의 황정민 연기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지면 반란이고, 이기면 혁명이다." "다 서울대 갈 머리는 있잖아. 가난해서 군인이 됐잖아."

그러나 지프차로 부하를 깔아뭉개며 총리공관을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보스'라는 포장이 허울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잘 보여준다. 불안해서 우왕좌왕하던 노태건이 "나 겁 안 먹었어."라며 헛폼을 잡는 것처럼 실존 캐릭터가 잘 녹아 있다.

군사반란을 주동한 하나회에 대한 묘사 또한 나약하지만 욕심이 많은 이중적인 소인배 무리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기세등등했다가도 금세 두려움에 쌓여 도망칠 궁리만 하는 그런 인물들이다. 전두광은 그들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나부터 쏘라고 겁박한다. 그러면 바로 머리를 수그리고 부하들에게 달려가 닦달한다.

북한의 위협에도 전방부대를 동원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이래도 돼?"라고 묻지만,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스'가 하사하는 떡고물을 받아먹을 자격이 주어졌을 것이다.

김성수 감독은 19살 때 한남동에서 총성을 들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어떻게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쉽게 바뀌나"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반란주동자들이 수세에 몰리자 혈연, 지연, 학연을 총동원해 전화를 돌린다. 또 그것이 먹히는 것이 하나의 촌극이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영화다. 영화가 44년 만에 나온 것이 다행스럽다. 그전에 나왔다면 스크린에 비친 참혹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회 무리는 희희낙락하며 반란 성공을 자축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진은 실제 사진으로 오버랩된다.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 증거물이 된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그들에게 선사하는 주홍글씨다.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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