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누가 괴물인가…리뷰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카모토 유지 각본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2018) 이후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 '브로커'(2022) 등 비옷을 입은 듯 제 색깔을 내지 못했던 그가 '괴물'(2023)로 다시 자신의 레시피를 자랑한다.

'괴물'은 누가 괴물인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을 법한 괴물들을 호명한다. 학생을 체벌하는 교사, 이런 교사를 옹호하는 교장, 그런데 진실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교사를 몰아세우던 학모가 괴물이 되고, 자신의 아이가 학폭의 가해자가 된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 있을까.

'괴물'은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7)을 통해 일본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추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솜씨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그러나 곪고 터진 상처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영혼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영화 '괴물'의 한 장면.

바닷가 작은 마을. 동네 걸스 바가 있는 건물이 화재로 불타는 날, 영화는 시작된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초등 5학년 아들 미나토(쿠로가와 소야)가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에게 묻는다. 싱글맘인 사오리는 불안하다. 어느 날부터 미나토가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귀를 다쳐 귀가하고, 물통에 흙이 담겨 있지 않나, 거기에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담임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호리는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 교장은 짜인 대사를 읽듯이 호리를 감싸고, 동료 교사들도 진실을 감추기에만 급급한다. 모두가 괴물 같다.

영화는 걸스 바가 불타는 날로 돌아간다. 이제 호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자 진실은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영화의 플롯이 긴장감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한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서로 다른 시점.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고, 진실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관객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괴물은 과연 누구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호기심과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영화는 그제야 메인 요리를 내놓는다. 이전 요리와는 맛과 향이 전혀 다르다. 스릴러처럼 어두운 색깔을 걷어내고, 가슴 아픈 비밀의 이야기를 따스한 손길과 눈길로 만들어 관객 앞에 내민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영화 '괴물'의 한 장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늘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 그런데 '괴물'은 각본가가 따로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사카모토 유지이다. 그럼에도 각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3년 간 공동으로 각색 작업을 거친 것도 있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의 관심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교권, 학교 폭력과 아동 학대, 한 부모 가정, 거기에 사회의 무관심과 배려 없는 인정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재료들이 다 녹아들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처럼 서로 다른 시선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플롯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각본이다. 올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뉜다. 파트 원이 아들을 위한 엄마의 시선이라면, 파트 투는 엉뚱한 일에 휘말린 억울한 교사의 시선이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파트 쓰리로 채워진다.

'누가 괴물인가'라는 의문은 점차 한 개인이 아니라 모두로 향한다.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 선생님에게도 감출 수밖에 없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이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괴물로 향했다가 그 가해와 피해가 고스란히 관객인 나에게로 전가된다. 굳이 괴물을 찾자면 우리 자신들이라는 점을 영화가 이야기한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영화 '괴물'의 한 장면.

올해 3월 사망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숨어버린 아이들의 비밀처럼 애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첫 협업이며, '괴물'이 유작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타이틀이 일본어가 아닌 한글 '괴물'이다. 한국 관객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음일 것이다.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의 여자 교장선생님이 "몇몇만 누리는 것은 행복이 아니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이 행복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나토와 함께 호른을 분다. 코끼리의 우렁찬 고함 같은 소리가 울린다. 우리를 깨우는 울림이다. 126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