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형사인지 교사인지 모르겠다", 처벌중심 학교폭력 대책 대안은 '공동체 중심 해결'

학폭 분쟁조정 관련 대구변호사회 인권세미나 토론회 머리 맞댄 전문가들
학교는 교육현장, 처벌에 앞서 갈등의 본질적 해소에 노력 쏟아야…
관계회복 프로그램 활성화, 가해자 반성·사과 유도할 전문가 도움 필요
"응보적 사법에서 회복적, 전환적 사법으로, 지역사회공동체 역할 커져야"

대구변호사회가 주최한 제24회 인권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대구변호사회가 주최한 제24회 인권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학교폭력 피해 사례가 늘고 저연령화 추세까지 보이면서 관련 대책 역시 처벌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해결을 우선 순위에 두는 방향으로 변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 사안의 조기 발굴과 개입, 당사자 간 화해 유도 등 교육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변호사회는 학교폭력 예방법 시행 20년을 앞두고 '학교폭력의 분쟁조정'을 주제로 인권세미나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장기간 이어진 학교폭력 예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들을 제시했다.

◆교육적 접근 방식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교육현장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해 교육적 접근 방식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석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은 지난 2011년 대구 중학생의 죽음을 부른 학교폭력 사건 이후 '무관용주의', '엄벌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학교 현장에서 "내가 교사인지 형사인지 모르겠다"는 교사의 자조가 나오고, 학교폭력 문제가 기피업무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응보적 사법구조에 기반을 둔 제도로 작동하면서 비교육적으로 사안을 처리한다는 비판이 많았다"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갈등과 폭력이 발생한 이유와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나 반성, 관계회복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육당국도 징계 등 처리 중심의 접근보다 학생 실태 파악과 조기 발굴, 개입 과정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학장 대구시교육청 장학사는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옳고 그름을 가려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목적을 두는 사법기관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학교폭력 관련 학생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은 있지만 당사자와 학부모의 동의가 원칙인 점도 아쉽다. 대화 모임 등을 의무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치, 처분 남발안돼…공동체 통한 해결방안 찾아야"

법조인들 역시 처벌보다는 갈등을 본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제도나 지원책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중휘 대구가정법원 소년부 판사는 "법원까지 오는 사건은 소수지만, 1년 이상 시간이 흘러도 당사자들은 감정적으로 여전히 격앙된 상태가 많다. 이는 대체로 '진심어린 사과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박 판사는 "사건 초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접촉이 갈등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할 역량을 갖춘 전문가가 잘못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깨닫게 하고 사과 방식과 태도를 조언하면 법원 문턱을 넘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민정 변호사는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으로 판단돼도 종결 권한이 없다. 피해 신고 접수 후 학교폭력이 아닌 걸로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가 신고를 취하하는 길 뿐인 건 불합리하다"고 짚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혜경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건 국가의 개입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응보적 사법에서 회복적·전환적 사법이 고려되는 시점"이라며 "고위험군은 직접 개입을 통한 형사·사법적 처분을 하되, 나머지 사안은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통한 해결 가능성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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