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난 더 살아야 해."
김일곤이 체포될 당시, 가장 먼저 외친 말이다. 범죄자의 억지 주장처럼 들렸지만, 이 말의 의미는 곧 충격적인 한 장의 메모로 이어졌다. 수사기관이 그의 소지품에서 확보한 그 메모에는 총 2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소, 전화번호, 직장 정보, 심지어 주민등록번호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김일곤이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들"이라 부른 명단, 즉 '살생부'였다.
그 명단에는 단순히 자신과 시비가 붙었던 사람부터, 자신을 수사했던 형사, 재판을 내린 판사, 병원 간호사, 나아가 자신을 무시했던 동사무소 직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를 확인한 수사팀은 경악했다. 김일곤은 법원에서 사건 관련 기록을 열람해 개인정보를 파악한 뒤, 범행 대상자를 하나씩 추려 살생부를 작성했다. 그가 외친 "난 더 살아야 해"란 말은 단순한 생존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 납치는 '계획'의 일부였지만…계획 틀어지자 살인
2015년 여름, 김일곤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고, 머릿속에는 '죽여야 할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 시작은 단순한 분노였다. 거리에서 발생한 차량 시비가 살인의 충동으로 번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김일곤은 '복수'를 준비했다. 복수 대상은 자신의 차량과 시비가 붙어 경찰 조사를 받게 만든 인물이었다.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그는 그의 주소지를 알아냈고, 직장 근처를 배회하며 범행을 준비했다. 범행 도구도 사들였지만, 그와 마주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분노는 커졌고, 그는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를 유인하려면, 여자를 이용해야겠다."
이 발상은 그를 더욱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갔다. 여성을 납치해 그가 일하는 노래방으로 끌고 간다는 계획. 그 시작은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의 표적 물색이었다. 그는 혼자 귀가하려는 여성을 노렸다. 첫 번째 대상은 도망쳤지만, 두 번째 여성 A씨는 그러지 못했다.
2015년 9월 9일, 충남 아산의 한 마트 주차장. 김일곤은 차량에 타려던 35세 여성 A씨를 흉기로 위협해 납치했다. 외딴 곳으로 차를 몰던 중 A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차를 세우고 도망치려 하자 김일곤은 A씨를 붙잡아 차량 조수석에 강제로 태운 뒤 살해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일곤은 A씨 때문에 자신의 궁극적인 계획이 틀어졌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자신을 무시한 여자들을 떠올리며 결국 A씨의 시신을 훼손하는 데 이르렀다. A씨의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그 순간부터 김일곤의 도주극이 시작됐다.
범행 이후 김일곤은 강탈한 차량을 그대로 운전하고 다녔다. 하지만 차량이 수배 대상에 오르자, 곧 경찰의 수색망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는 도주 중에도 차량 번호판을 여러번 바꾸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9월 11일, 도주 중이던 김일곤은 부주의로 차량 접촉사고를 냈고 곧바로 현장을 이탈했다. 트렁크에는 시신이 실려있던 상태였다. 그는 증거 인멸을 위해 차량에 불을 내고 그대로 도주했다.
경찰의 검문 검색은 강화됐고,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하자 그는 '어떤' 결심을 했다. 그는 흉기를 든 채 동물병원에 들어가 안락사 약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으나, 의사의 112 신고로 상황은 금세 반전됐다. 인근 지구대 경찰들이 출동 과정에서 도주 중이던 김일곤을 발견해 격투 끝에 체포다.

◇28명의 살생부... 정작 살해당한 건 명단에도 없던 여성
그가 저지른 범행만큼 경찰을 놀라게 한 건 또 있었다. 그가 체포됐을 당시 소지하고 있던 메모지에는 자신이 죽이려 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전과 22범인 그가 사건 기록을 열람해 알아낸 개인정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김일곤은 해당 메모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다 죽이고자 한 XX들을 못 죽이고 가니, 그 XX들 쾌재 부르겠네요."
말은 농담처럼 흘렀지만, 조사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사망한 A씨는 그 명단에 없었다. A씨는 그저 계획의 일부에 끼어든 사람, 단지 여성이었고, 이용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희생된 존재였다.
법원은 그의 심리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심리평가를 의뢰했다. 결과는 '사이코패스 고위험군'. 공감능력 결여, 충동 조절 실패, 재범 가능성 모두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김일곤의 사이코패스 지수(PCL-R)는 26점. 국내 기준(25점)을 넘는 고위험 점수였다.
당시 투입된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김일곤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일곤은 체계적이지도 않고, 패턴도 없이 짐작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살인범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것이 결국은 쌓이고 쌓여서 이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김일곤의 범죄 이력은 청소년기로 거슬러간다.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중학생 시절엔 교사를 폭행해 퇴학당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단순한 도로교통법 위반부터 강도, 절도, 상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실형과 벌금형이 수차례에 이른다. 폭력과 범죄는 그의 삶의 일부였다.
이번 사건 재판에서 그는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 "재판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국선변호인도 거부했다. 결국 법정에 선 그는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피해자 유족 앞에서도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선고 직전에도 그는 "사형 선고가 내려질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저를 음해하고 모함한 놈들이 계속 잘 먹고 잘 산다면, 이건 죽은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그냥 사형을 달라"고 외쳤다.
A씨의 여동생은 재판 내내 방청석에 앉아 김일곤을 지켜봤다. 그는 "세상 살면서 억울한 사람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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