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남한테 손가락질당하지 말고 살라" 가슴에 새긴 엄마의 가르침

수필가 노정희 씨의 어머니 고(故) 김복상 씨

시골집 앞에서. 왼쪽부터 작은올케, 어머니, 필자(노정희). 노정희 씨 제공
시골집 앞에서. 왼쪽부터 작은올케, 어머니, 필자(노정희). 노정희 씨 제공

코로나19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어머니께서 기력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꼬마야, 엄마는 아무래도 갈 것 같구나." 가슴속에서 무언가 "쿵!" 내려앉았다. 화병인 줄 만 알았는데 위암이었다. 위로 토하고 아래로 싸는 게 자식들한테 면목 없다며 엄마는 겨우 물만 몇 모금씩 마셨다. 나중에는 그 물마저도 토해냈다. 그 고통을 깊은 동굴에 가두고 홀로 삭인 거였다.

병원 측의 연명치료 서류를 받아들었다. 큰오빠는 모든 조치를 다 해달라고 하였으나 나는 안 된다고 막아섰다. 고통스러운 연명은 소용없는 일이라며, 차라리 하늘의 뜻을 따르자고 했다. 오빠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우리는 얼굴을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비… 온… 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데 비가 온다니, 불현듯 엄마 침상 쪽으로 눈길이 쏠렸다. 산소발생기에서 피어오르는 방울 방울이 엄마 호흡에 맞춰 뛰어올랐다 내려앉았다 뜀뛰기를 한다. 또르르 또르르, 병실을 가득 채우며 달려 나오는 산소 방울 소리. 아, 저 소리가 엄마한테 밤비로 내리는구나. 평상시 엄마는 잠귀가 밝아 이슬비 소리에도 발딱 일어나서 비 설거지를 하였다. 시골 살림 조금 젖기로서니 큰일 날 일도 아닌데 땔감용 잔가지 하나라도 비에 젖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별히 효도해 드리거나 걱정을 끼쳐드리지도 않았노라 했는데, 스멀스멀 치솟아 오르는 오래전 기억에 울컥 목이 메었다. 학교 보내 달라고, 학교 보내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낳았느냐고 울며불며 엄마께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막내딸 울부짖음에 기(氣) 꺾일 어머니가 아니었다. '다랑판 집 딸네들은 초등학교만 다녔어도 객지에 나가서 돈 벌어와 소도 사주고 땅도 사준다더라'라는 말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께 시도한 반항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의 완력을 피해 시골을 떠나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께 복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다. 나 역시 삶에서 여러 번의 고비를 겪었으나 집안에서 반대한 결혼이었기에 이를 앙다물었다. 그것 봐라, 반대할 때 그만두지. 그런 말을 듣기 싫었다. 늦깎이 공부한다고 헉헉거릴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너거 오라비들 뒷바라지하느라 막내인 너까지 공부시켜줄 여력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등바등 살아오셨다.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건사하며, 육남매 자식을 길러냈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알뜰하게 살라고, 남들한테 손가락질당하지 말고 살라고 가르치던 엄마였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곳에 다 다니면 쪽박밖에 찰 게 없다고 하셨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엄마의 말씀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이러실까.

"살아온 게 길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잠깐이구나. 몸 성할 때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하고픈 일 하며 지내라." 살아있는 별만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일까. 엄마는 막다른 길에서 태연히, 별빛의 꼬리를 자르고 있었다. 돌아갈 길을 찾고 있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천연덕스러운 항성으로 남아있을 엄마의 별. 힘없이 깜박이며 엄마 앞에 막아선 어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가 곁에 있는데, 나는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외롭고 무서웠다. 엄마 귀에 대고 나지막이 "엄마!" 부르면, 엄마는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들어 올려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작년 3월 초순, 하늘 문이 열렸다. 하늘빛은 푸르다 못해 시리고 아렸다. 엄마 가는 날에 조부모님과 아버님까지 파묘하여 화장하라는, 흔적 남기지 말라는 말씀을 좇았다. 엄마는 맨 처음 오셨던 그 길로 가벼이 돌아가셨다. 햇살이 날개처럼 펼친 하늘길을 따라 훨훨 떠나셨다. "엄마, 후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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