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나 혼자 산다’, MBC 예능의 새로운 인큐베이터

MBC ‘나 혼자 산다’, 1인 리얼리티에서 무한 확장, 스핀오프 가능성까지

MBC '나 혼자 산다' 로고. MBC 제공
MBC '나 혼자 산다' 로고. MBC 제공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사실 제 아무리 잘 나가던 프로그램도 오래되면 본래의 힘이 소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 바로 '나 혼자 산다'다.

◆먹방도 '나 혼자 산다'가 하면 다르다?

먹방은 지겹다? 사실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언제 어디서든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먹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열광했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먹방'이라는 단어를 일반적으로 쓸 정도로 글로벌한 인기도 얻었지만 이젠 좀 한풀 꺾인 방송 트렌드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사실 음식은 시공간을 넘어 변함없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소재로서 스테디셀러다. 다만 이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진 만큼 담는 그릇도 또 담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차별점이 중요할 뿐이다. 이를 테면 백종원이라는 독보적인 인물이 등장해 마치 최배달이 도장깨기를 하듯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먹방을 선보인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길거리 음식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이를 다큐멘터리적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호평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또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한 때 이영자가 전국의 휴게소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색다른 먹방의 열풍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런 점에서 MBC '나 혼자 산다'의 전현무, 박나래 그리고 이장우가 팀으로 꾸려진 '팜유 세미나'는 이러한 색다른 콘셉트가 더해져 하나의 브랜드가 된 먹방 프로젝트다. 유난히 음식을 좋아해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즐기는 이들은 그래서 방송할 때마다 얼굴이 부어있거나 기름기가 흘러 '팜유'라는 이름이 붙었고, 좀 더 맛을 연구한다(?)는 취지가 더해져 '세미나'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렸다. 물론 간간히 새로운 요리 개발에 진심인 이장우가 뭔가 재료를 갖고 뚝딱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보고 맛도 보는 '연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건 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의 핑계에 가깝다. '세미나'라고 붙여놓고는 찾아가는 지역의 맛난 음식을 몸에 대한 별 죄의식(?)없이 마음껏 먹어본다고나 할까. 연구를 위한다는 핑계로.

전현무가 주도해 베트남에서 펼쳐진 해외 세미나에서는 달랏의 야시장 음식부터 베이커리를 찾아 마음껏 즐기는 먹방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더니, 박나래가 이끈 목포 세미나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간 백반집에서 어마어마한 반찬들 앞에 몇 그릇의 밥을 때려 넣는 모습으로 '팜유'의 진가를 보여줬다. 그들이 다시 뭉쳤다. 이번은 대만이고 이장우가 모든 걸 계획했다. 타이중에서 과거 드라마를 찍으며 6개월 머물렀던 그 경험을 살렸다.

첫 날 도착하자마자 간 100년된 고기완자집에서부터 미슐랭 맛집, 족발로 여는 아침이나 한 번 잘못 발을 들였다가는 비행기 놓칠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식욕을 자극하는 야시장까지 미각을 자극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가 주는 빵빵 터지는 웃음까지 프로그램에 꽉꽉 채워졌다. 흥미로운 건 그저 먹는 데만 집중하던 이전 세미나와 달리 이번에는 '상견니' 세계관을 가져와 이른바 '삼켰니'를 재현하며 스쿠터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MZ세대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가는 등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재미까지 더해놓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먹방'이지만 '팜유'라는 캐릭터와 '세미나'라는 세계관이 더해지면서 매 회 진화를 거듭하자 하나의 스핀오프로 나와도 될 법한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나 혼자 산다'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MBC '나 혼자 산다' 포스터. MBC 제공
MBC '나 혼자 산다' 포스터. MBC 제공
MBC '나 혼자 산다' 포스터. MBC 제공
MBC '나 혼자 산다' 포스터. MBC 제공

◆'나 혼자 산다'가 파생시킨 캐릭터, 프로그램들

물론 스핀오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상당부분 '나 혼자 산다'가 그 발판이 돼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김지우 PD가 '나 혼자 산다' 출신이고 여기서 기안84와 인연이 돼 런칭한 프로그램이 바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지난 한 해 가장 두드러진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이제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로 예능의 트렌드를 이끄는 중심축이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에 이 프로그램은 그 과도기에 딱 어울리는 여행 예능을 내놨다. '나 혼자 산다'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날 것의 모습이 거의 유튜버에 가까운 기안84가 그 중심을 잡았고, 여기에 스타 여행 크리에이터인 빠니보틀과 역시 OTT 콘텐츠 등을 통해 인기를 얻은 덱스가 들어오면서 구성이 완성됐다. 그래서 유튜브 같은 감성의 찐 리얼 여행기가 펼쳐지면서도 동시에 지상파가 갖는 스케일과 완성도를 갖췄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10년 째 달려오면서도 여전히 핫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건 이처럼 이를 중심으로 파생시켜 나오는 캐릭터들과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나 혼자 산다'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는 걸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지난 5월 전현무가 기획해 떠난 '무지개 10주년 패키지 여행'이다. 전현무를 비롯해 무지개 멤버 8인이 함께 했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캐릭터의 색깔이 분명했다. 음식에 진심인 이장우와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식좌 코드쿤스트가 그렇고, 이 프로그램의 조상격으로 옛날 사람 캐릭터를 드러내는 김광규나, 엉뚱한 무도인 캐릭터 김주승 같은 캐릭터들이 그렇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지나간 무수한 무지개 회원들 중 이렇게 분명한 캐릭터를 가진 이들이 간간히 등장해 이벤트적인 특집을 선사하곤 한다. 예를 들어 김주승의 '무도인 특집'이 그것이다. 뒷산에 올라 무술 수련을 한다며 뜬금없이 축지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엉뚱한 수련으로 웃음을 주는 이 특집은 적당한 쿨타임을 두고 등장해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팜유 세미나의 주축들이 등장하는 '팜유즈 특집'도 마찬가지다.

MBC '나 혼자 산다' 캡처. MBC 제공
MBC '나 혼자 산다' 캡처. MBC 제공

◆1인 라이프에서 캐릭터 리얼리티쇼로 진화한 '나 혼자 산다'

사실 '나 혼자 산다'에서 인기있는 '무도인 특집'이나 '팜유즈 특집' 같은 걸 보면 이제 이 프로그램이 애초의 취지였던 '1인 라이프'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나 혼자 산다'가 국내에 이미 정착된 리얼리티쇼의 초창기 흐름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쇼가 여전히 불편해 '관찰카메라'라는 새로운 지칭으로 불리던 시절 등장했다. 아직까지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딘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던 그 시절, 이 프로그램은 '1인 라이프'라는 취지를 앞세워 관찰카메라를 찍었다. 그러다 점점 관찰카메라가 익숙해지면서 1인 라이프 같은 취지는 그리 중요한 일이 되지 않게 됐다. 그러다 지금처럼 리얼리티쇼가 정착된 상황이 오자, 이제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이들의 리얼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걸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치 캐릭터쇼의 시절에 '무한도전'이 했던 걸 이제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나 혼자 산다'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정 무지개 멤버들이 있지만, 그 때 그 때 새롭게 등장한 멤버들이 가세하면서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 시절에 여기서 파생된 아이디어들이나 캐릭터들이 다른 프로그램들로 확장되곤 했던 그 흐름이, 이제는 '나 혼자 산다'를 주축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안84같은 캐릭터가 탄생하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게 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저력을 말해준다. 어쩌면 '나 혼자 산다'는 리얼리티쇼 시대에 향후 MBC 예능의 새로운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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