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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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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설 전후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 배추가 있다. 바로 봄을 부르는 배추 봄동이다. 동네 가까운 월배시장에 갔더니 벌써 봄을 깨우는 나물 봄동이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 봄동은 겨울에 들면서 씨앗을 뿌려 겨울과 이른 봄에 거두어 봄을 기다리며 먹는 채소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설이 지나면 더 맛있어진다.

제대로 맛이 들면 고소한 맛이 강해지고 단맛이 나면서 식감은 부드러워 생으로 쌈을 싸서 먹어도 맛이 좋고. 겉절이 무침을 만들어 먹으면 마치 상큼한 봄을 씹는 것처럼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봄동은 배추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납작하게 생겨서 일부 지방에서는 납작배추, 납딱배추, 딱갈배추, 떡배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모양이 꼭 소가 한 무더기 싸놓은 것 같아서 '봄똥'으로 불렀다는데 사람이 먹는 것을 '똥'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봄동'이라고 쓰게 됐다는 설도 있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봄똥, 봄똥, 발음하다가 보면/ 입술도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봄똥, 텃밭에 나가 잔설 헤치고/ 마른 비늘 같은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솎아 먹는/ 봄똥, 찬물에 흔들어 씻어서는 된장에 쌈 싸서 먹는//봄똥..."

봄동 하면 안도현의 시 '봄똥'이 생각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노지에서 혹독한 겨울바람을 견뎌낸 봄동은 속에 알배기가 차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펑퍼짐하게 퍼진 모습이다. 늙으신 어머니를 닮았다. 젊은 시절 너무 예뻤던 어머니는 김장배추처럼 속이 꽉 찬 모습으로 시집와서 오랜 세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봉양하고 아들딸 손주들까지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고 이제는 잎이 옆으로 푹 퍼진 봄동 배추처럼 살이 빠져 뼛골까지 여의셨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매서운 한겨울 칼바람에도 얼지 않는 배추가 바로 봄동 같은, 우리 어머니다. 학산을 넘으면 바로 어머니가 사는 동네다. 엊그제도 학산 넘어 어머니 집에 다녀왔다. 봄동으로 김치를 담아놓으셨는데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산 넘어 어머니 집에 자주 간다. 나 어릴 적 아픈 배 쓸어 낫게 하던 어머니 손, 그 크신 은혜. 온몸으로 갚아 드려야겠는데 벌써 연세가 아흔넷.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요즘은 매주 두 번씩 학산을 넘는다. 봄동을 보니 벌써 봄이 온 듯하다. 울 어무이 그 따신 손으로 버무린 봄동 재래기가 먹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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